오래 투자하면 결국 돈 번다?‥장수펀드의 '불편한 진실'
5년 누적 수익률, 원금 까먹은 상품도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회사원 강민성(38)씨는 5년 전 A펀드에 1000만원을 넣었다. 2004년 설정 후 6년 누적 수익률이 100%를 훌쩍 넘었던 A펀드에 5년 정도 장기투자 할 심산이었다. 강씨의 믿음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년 수익률은 예ㆍ적금 금리에도 못 미치는 1%대 초반에 그쳤다. 지난 5년 간 누적 수익률은 6.93%로 이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24.5%)에도 크게 못 미쳤다. 대신 펀드매니저가 바뀌었다는 소식만 5번 들려왔다. '묵혀야 장맛'이라는 장기투자의 속설은 펀드매니저의 잦은 교체 앞에서 통하지 않았고 장기투자 원칙을 지켰던 강씨만 뒤통수를 맞았다.
5일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설정 10년 이상의 국내 주식형펀드 92개(설정액 100억원 이상) 중 9개는 최근 5년 간 누적 수익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지난달 28일 기준). 장수펀드 10개 중 1개는 5년간 수익률이 은행 예ㆍ적금보다 못했던 셈이다.
수익률이 지난 5년 동안 코스피지수 상승률을 밑도는 펀드는 전체 장수펀드의 3분의1 수준인 34개나 됐다.
장기투자했지만 원금을 까먹은 장수펀드도 있었다.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의 '프랭클린그로스(주식) 4'는 5년 수익률은 -1.11%로 뒷걸음질 쳤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3억만들기좋은기업K- 1(주식)C 5'는 1.01%로 겨우 플러스를 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 1(주식)(C 1)'는 5.13%, 동양자산운용의 '동양모아드림 1(주식)A'는 6.93%로 연평균 1% 수준의 수익률에 그쳤다.
수익률이 나쁜 장수펀드를 살펴보면 운용 기간은 오래됐지만 운용 인력 교체가 잦았거나 시류에 편승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 5년간 운용역이 1년에 1번 꼴로 교체된 동양모아드림 1(주식)A 펀드가 대표적이다. 운용역이 자주 바뀌다 보니 펀드매니저가 일관성 있는 투자 전략과 철학을 갖고 펀드를 운용할 수 없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펀드매니저 손바뀜이 잦은 펀드는 자신이 운용을 맡은 시기에 수익률을 올리는 데 급급하느라 장기적인 수익률을 관리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반면 한 펀드매니저가 꾸준히 운용하는 펀드는 수익률이 좋은 편이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부사장)가 지난 2003년부터 운용해 온 '신영밸류고배당(주식)C형' 펀드의 경우 5년 수익률이 88.66%에 달한다. 코스피 상승률의 3.6배다.
'열등생' 장수펀드 중에서는 펀드 명분에 집착하거나 특정 종목을 맹신해 시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미래에셋3억만들기좋은기업K- 1(주식)C 5는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강조하는 추세에 맞춰 출시한 사회책임투자(SRI) 펀드다. 삼성전자, POSCO 등 대형주 위주로 담았지만 편입 종목 주가가 빠지면서 출시 초반과는 달리 수익률이 부진하다. POSCO는 지난 5년 동안 주가가 48.5% 하락했다.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 1(주식)(C 1)은 삼성그룹주에 대한 과도한 맹신이 수익률 부진으로 이어진 경우다. 국내 최고 그룹의 주가는 시장 수익률을 상회할 것이라는 판단이 깨진 것이다. 삼성그룹에는 삼성전자 뿐 아니라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계열사가 있는 데다 저마다 주가 향방도 엇갈리면서 부진한 결과를 낳았다.
업계에서는 장수펀드의 수익률 부진은 장기투자가 정답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익률을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국내·해외 등 지역과 주식·채권·인컴 등 자산을 분산해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또 펀드 수익률에는 가입 시점이 중요한데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적립식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운용사 관계자는 "어느 시기가 증시 저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펀드에 매달 적립식으로 꾸준히 투자해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는 게 필요하다"며 "펀드가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면 환매하는 것도 고점을 알 수 없는 요즘같은 장에서는 좋은 출구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펀드를 고르는 게 어렵다면 차라리 상장지수펀드(ETF) 등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조언도 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시장에 투자하는 전략, 모멘텀 플레이를 쫓는 펀드가 아니라 시간에 투자하는 펀드를 골라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 장기투자해야 한다"며 "다양한 펀드를 꼼꼼하게 비교해서 좋은 펀드를 고르기가 어렵다면 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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