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권하는 사회…부자들까지 옮겨가다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월세 전환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배경은 무엇보다 저금리 영향이다. 2011년 초 3.5%였던 정기예금 금리는 올해 초 2.1%로 떨어졌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이 3억원인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입이 연 1050만원에서 630만원으로 줄어든 셈이다. 최근에는 아예 예금금리가 1%대까지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갈수록 월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서울 잠실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2년 전 8억원에 전세 계약했던 집들이 올해 월세 80만원을 추가하는 조건으로 계약한 사례가 있다"면서 "올해 들어 더 급격히 월세가 늘어나고 있어서 전세 물량은 20%도 채 안 될 정도"라고 전했다.
돈을 빌리기 쉬워졌다는 점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011년 1월 4.8%에서 올해 초 3.3%로 하락했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이후 대출 금리보다 높은 월세를 받으면 그만큼 차익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또 불확실한 집값 전망이 월세 전환의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 부동산 활황기에는 집을 구입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였다.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몇 달만에 수천만~수억원씩 가격이 오르기도 했다. 월세 수입은 푼돈으로 보일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같은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고정적인 월세 수입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도 집을 사려는 의지가 약화된 것이 전세나 월세 선호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를 보면 '내 집을 꼭 마련해야 한다'는 주택 보유 의식은 2010년 83.7%에서 지난해 79.1%로 줄어들었다. 갈수록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월세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유덕현 하나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예전에는 집주인들이 전세를 놓고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했는데 이제는 가격 상승 전망이 밝지 않다보니 월세로 많이 바꾸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물론 사회초년생이나 저소득층 등 목돈 마련이 어려운 계층은 과거와 비슷하게 월세를 전전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월세 전환이 늘다보니 거주비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가구당 소비지출액 대비 실제주거비(월세+기타주거비) 비중은 2011년 2.07%에서 지난해 2.41%로 상승했다.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의 경우 같은 기간 4.34%에서 4.56%로 높아졌다. 비교적 소득이 높은 4분위 역시 1.35%에서 2.24%로 크게 상승했다. 월세 전환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결과로 풀이된다. 월세 가구만 놓고 보면 소비지출액 대비 월세지출액 비중은 2013년 기준 14.9% 수준에 이른다.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2012년 상반기에서 지난해 상반기 사이 월세보증금 변화를 보면 보증금 1000만원 미만, 2000만원 미만의 소액보증금 월세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보증금이 낮아질수록 월세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부 지역에서는 초고액 월세도 생겨나고 있다. 일부 고소득 전문직이나 최고경영자 등이 주택 매입에 부담을 느껴 월세 부담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고 여기면서 수요를 떠받치는 것이다. 소득으로 고액 월세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렌트리치'인 셈이다.
서울 서초동 래미안서초7차 전용면적 110㎡의 경우 보증금 1억5000만원 조건에 월 임대료가 300만원에 이르며, 잠실 레이크팰리스 84㎡는 1억원에 200만원 수준이다.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3차 124㎡는 4억원에 300만원, 역삼동 테헤란아이파크 118㎡의 경우 1억원에 350만원에 매물이 나와있다.
강남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전문직이나 경영인들 중에서 집을 샀을 때 세금 부담이나 집값 하락 등을 감안해서 고액 월세라도 부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월세 시장이 출렁이고 있지만 정부는 한국감정원을 통한 3000가구가량의 표본 월세 조사에 그치고 있다. 표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다양한 보증금과 월세 조합 등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전입신고시 월세 가격을 파악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정부는 집주인들의 세원 노출 부담 등을 고려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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