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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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 교수의 패션메신저] 글로벌 진즈웨어(Jeanswear) 업체들의 경연 무대인 제16회 '데님 프레미에르 비죵'이 1주일 전인 5월27~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다. 이탈리아, 스페인, 홍콩, 프랑스, 독일, 등 주요 21개국의 진즈웨어 업계가 참여한 잔치였다. 한 품목의 직물로 이런 국제적 행사가 매년 열린다는 것은 바로 ‘진’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다.


진은 이태리의 도시, 제노아에서 능직으로 직조한 면직물이었다. 진이 생산된 도시 Genes가 불어로 제노아라 불렸고 이어 진(gea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제노아의 진은 ‘적당한 질과 싼 가격’으로 공급된 노동자들의 옷감이었다. 제노아의 뱃사공들은 옷뿐 아니라, 부두에 쌓아둔 짐들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덮는데도 진을 사용했다. 17, 18세기엔 진이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제노아의 진을 부러워한 프랑스 니메의 직공들은 진을 능가 하는 새로운 직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직물이 니메의 서지(serge de Nimes)로 후에 데님이 됐다. 물론 진과 데님은 원천적으로 다르지만 둘 다 면사로 짠 서지에 전통적으로 인도의 인디고를 사용해 푸른색으로 염색을 했다. 다만 진과 달리 데님은 노동판의 노동복뿐 아니라, 간단한 작업 때 입는 스모크나 오버롤 같은 옷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 둘은 크게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다.

진이 넓게 사랑 받게 된 계기는 샌프란시스코의 리바이 슈트라우스(Levi Strauss)가 있었기 때문이다. 18세에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후, 미국 서부의 금광업자들에게 텐트용 두꺼운 천을 팔던 리바이 슈트라우스가 진으로 바지를 만들어 판게 그 시작됐다. 그는 1871년, 제이콥 데이비스(양복 기술자)와 동업을 시작한다. 그들은 청바지의 터지기 쉬운 주머니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구리 리벳(징)을 박는 방법을 고안, 1873년 특허를 받았다. 뒷날 후계자들은 그 바지를 '리바이스(Levi's)'란 상표로 정식 등록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에 청바지를 공급하면서 이 브랜드가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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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바지는 산업화 물결을 타고 일상복으로 자리 잡아갔다. 1930년대에는 서부영화에서 카우보이들이 입으면서 남성미를 부각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의복이 됐다. 1950년대에 텔레비전과 영화 등을 통해 반항적인 이미지가 연출되면서, 젊은 층의 열렬한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젊은이들의 패션 속에서 반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남녀간의 성차가 거의 사라지게 하는 역할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그렇게 진은 젊음, 반항, 자유, 성의 혼돈에 이어 펑크 룩, 앤드로지너스(양성성) 룩, 빈곤의 상징인 그런지 룩(grunge look), 빈티지 룩(vintage look) 등으로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의 주역인 여성과 청소년 문화의 혁명을 주도했다.

노동복에서 출발한 진은 이제 전 세계의 남녀노소는 물론, 때와 장소에 구분되지 않고 애용되는 귀한 몸이됐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일류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작품 세계를 이 진을 통해서 표출해내고 있다. 노동복 옷감이 파티복이 되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미래의 가능성을 끄집어낸 리바이 슈트라우스에게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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