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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뉴스]카바이드 막걸리는 70년대 ‘불순한 의도’의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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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장] (1) '과연 정말로'라는 뜻의 순우리말 (2) 춘장을 볶은 중국풍 소스.
짜장뉴스는 각종 인터넷 이슈의 막전막후를 짜장면처럼 맛있게 비벼 내놓겠습니다. 과연? 정말로?


1. 상식이 뒤집히는 시대
과학적인 연구가 쌓이면서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 일반인의 오해가 상식으로 통용되곤 해요. 그 오해가 수십년 동안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죠.

예컨대 사카린이 암을 유발한다는 상식, MSG라고 불리는 L-글루탐산나트륨이 인체에 해롭다는 상식은 모두 거짓으로 입증됐어요. 최근엔 사카린이 암을 유발하기는커녕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사카린을 유해물질로 지목해온 사람들의 ‘입맛을 쓰게’하기도 했지요.

이처럼 오랫동안 믿어온 몇몇 상식이 뒤집히는 가운데 최근 인터넷에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카바이드 막걸리’가 지어낸 얘기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요.
장성 고로쇠 생 막걸리 모습. 사진제공=장성군

장성 고로쇠 생 막걸리 모습. 사진제공=장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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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카바이드 막걸리라는 화학적 단어

‘카바이드’는 과거 막걸리에 붙은 명예롭지 않은 수식어였어요. 사람들은 막걸리를 과음한 다음 날 “저질 카바이드 막걸리였나보다”며 숙취를 하소연하곤 했답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카바이드 막걸리 제조 공법은 다음과 같았어요.

#1. 고두밥을 신속하게 발효시키기 위해 카바이드를 투여하는 바람에 불순물이 많았고 맛도 균일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숙취가 심했다.

#2. 탁주업자들은 발효 기간을 앞당겨 생산원가를 줄이려고 공업용 화학물질인 카바이드(calcium carbide)를 넣어 막걸리를 만들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런 막걸리를 마시고 뒤끝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다음 날엔 어김없이 숙취와 두통이 뒤따랐다. 그만큼 카바이드 막걸리는 악명이 높았다. 막걸리가 ‘뒤끝이 안 좋은 술’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이유다.

카바이드 막걸리, 이는 그 복합화학물질스러운 어감만으로도 벌써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면서 뒷골이 쑤시게 하는 단어 아닙니까. 이런 얘기가 술잔과 함께 돌고 돌면서 막걸리는 뒤끝이 안 좋은 술로 찍히게 됐지요.

3. 주류과학 전문가 조호철 박사의 반론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나라 주류과학계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조호철 박사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조 박사는 “양조 분야에 50여년 이상 종사한 분들을 인터뷰했지만 그들 역시 (카바이드 막걸리에 대한) 소문만 있기 실체가 없거나 잘못 이해한 경우였다”고 말했어요. 그는 “당시 신문기사를 분석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어요.

조 박사는 “당시 시대 상황으로 판단컨대 목적성이 있는 기사일 것”이라는 추론도 덧붙였어요.

4. 오일쇼크 시기 정부의 막걸리 ‘탄압’

점점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군요. 당시는 어떤 때였고, 무슨 상황이었으며, 목적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시계를 1975년으로 되돌려보겠습니다.

정부는 1975년에 소주 업체를 지원하고 막걸리 업체를 ‘탄압’하기 시작해요. 소주는 도수를 기존 35도에서 25도로 낮추도록 합니다. ‘소주에 물을 타도록’ 해준 것이죠. 원가가 덜 드니 소주업체들은 마진을 더 챙기게 됐어요. 반대로 비위생적인 술도가를 적발하고 밀주업자를 잡아들이며 막걸리에 비위생적이고 불법이라는 이미지를 씌웁니다.

이런 특혜와 차별의 목적은 물가 안정과 무역수지 적자 축소였습니다. 정부는 소주업체가 도수를 내려 원가 부담을 줄이도록 하는 대신 가격을 한 자리만 올리도록 했어요. 또 소주 주정의 원료인 태국산 타피오카가 막걸리 원료인 수입 밀보다 저렴하다는 점에서 술꾼들이 소주를 더 마시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어요. 당시 중동 오일쇼크로 물가가 연 20% 앙등하고 무역수지 적자가 불어나는 중이었거든요.

1974년까지 “술 한 잔 하자”면 으레 막걸리를 뜻했답니다. 당시까지 소주는 대중주 축에 끼지 못했대요. 간혹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있었지만 호주머니가 가벼운 막노동꾼 정도였다고 해요. 맥주는 비쌌고요.

막걸리는 1974년 최고 출하량 기록을 세웠습니다. 당시 전체 술 소비량의 70%를 차지했어요. 그러나 정부가 다각도로 탄압하자 막걸리 소비는 급격하게 감소해 소주에 ‘주류(酒類)의 주류(主流)’ 자리를 내게 됩니다.

조 박사가 추정하는 카바이드 막걸리 기사의 ‘목적’은 주당들의 입맛을 소주로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5. “카바이드 분말 첨가하면 음용 불가”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자료 분석과 추정이지요. 조 박사는 직접 실험에 나섭니다. 그는 “실험을 통해 카바이드를 첨가한 막걸리 제조는 불가능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2011년 양조과학회에서 ‘문헌고찰을 통한 막걸리의 과학적 재해석’이라는 논문으로 발표합니다.

조 박사는 “카바이드 분말을 발효용기에 첨가하면 역겨운 냄새 때문에 도저히 마실 수 없는 막걸리가 된다”며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카바이드로 막걸리를 만들 수 없다”고 단언했어요.

카바이드 분말을 물에 넣었을 때 반응. 거품이 발생하면서 뿌옇게 된다. 사진=조호철 씨 페이스북

카바이드 분말을 물에 넣었을 때 반응. 거품이 발생하면서 뿌옇게 된다. 사진=조호철 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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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박사는 가설 하나를 내놓습니다. 물에 카바이드를 넣으면 부글부글 끓는 것이 꼭 막걸리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그는 “이 모습을 본 어떤 이가 막걸리를 카바이드로 만드는가보다라고 술자리에서 말했고 이 얘기가 돌고 돌아서 ‘카바이드 막걸리’가 탄생했다”고 추론합니다. 여기에 “감을 빨리 숙성시키는 데 카바이드가 쓰인다는 과학적 사실과 결합하면서 양조장들에 카바이드를 써서 술을 속성으로 발효시키려는 유혹이 있었다는 논리도 추가됐다”고 설명합니다.

6. 카바이드란 무엇인가

여기서 잠시 카바이드가 무엇인지 과학 강의를 들어보겠습니다. 카바이드라는 물질은 탄화칼슘입니다. 탄화칼슘을 물에 넣거나 공기 중 수분과 결합하면 아세틸렌 기체가 발생하고 염화칼슘이 생깁니다.

카바이드. 사진= 위키피디아

카바이드.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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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틸렌은 색상이 없고 방향(芳香)이 나는 기체입니다. 예전에는 램프의 연료로 쓰였지요. 용접기의 불꽃도 아세틸렌을 태워서 냅니다. 아세틸렌은 과거에는 과일을 숙성시키는 데에도 활용됐어요. 떫은 감 상자 안에 아세틸렌 가루 조금을 솜에 싸 놓으면 생겨난 아세틸렌이 감을 익게 했지요. 이제는 과일 후숙에 아세틸렌 대신 에틸렌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7. 카바이드가 양조에 도움을 주려면

조호철 박사의 주장을 최근 ‘에코타운’이라는 필명의 블로거가 소개하며 더 구체적으로 분석했어요. 에코타운은 카바이드 막걸리가 가능하다면 세 가지 중 하나라고 설명해요.

첫째 카바이드에서 나온 아세틸렌이 전분을 바로 알코올로 만든다.
둘째 아세틸렌이 전분의 당화를 촉진한다.
셋째 아세틸렌이 효모의 활성을 증가시켜 포도당의 에탄올 전환 과정을 촉진한다.

에코타운은 “가정1은 헛소리고 가정2와 가정3은 이런 실험을 한 연구자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합니다.

8. ‘카바이드 막걸리’는 도시괴담?

전문가 두 분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카바이드 막걸리는 빚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카바이드 막걸리’는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만들어진 도시괴담 중 하나였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제3의 전문가로부터 말씀을 듣기로 했습니다. 과학지식을 대중에게 알리는 활동에 적극적인 화학자인 이덕환 서강대 교수입니다. 마침 이 교수는 73학번으로 ‘비주류’로 밀려나기 전의 막걸리를 즐겨 마신 분입니다.

이 교수는 “학창시절 무교동 낙지 안주에 마시는 술이 소주가 아니라 막걸리였다”고 들려줬습니다. 이어 “카바이드 막걸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막걸리는 냄새가 고약하고 저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카바이드를 막걸리 제조에 썼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카바이드를 물에 넣으면 아세틸렌을 발생시키면서 열을 내는 효과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알코올을 발생시키는 발효는 온도가 높아야 활발히 이뤄지는데,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추웠고 막걸리 술도가에게는 연료비 부담이 컸다고 설명했습니다.

막걸리를 빚기 위해 누룩과 효모를 물에 넣어 발효시키는데 효모의 작용이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하려면 온도를 높이면 되고, 온도를 높이기 위해 카바이드를 넣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카바이드 막걸리를 적발했다는 동아일보 1972년 11월 11일자.

카바이드 막걸리를 적발했다는 동아일보 1972년 11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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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덩어리로 넣었을 가능성

그렇다면 당시 카바이드를 조호철 박사의 실험과 달리 분말이 아니라 덩어리 형태로 담금조에 넣어두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아세틸렌을 발생시키되 술에 카바이드(탄화칼슘)가 섞이지는 않은 게 아닐까요. 탄화칼슘은 열을 내면서 아세틸렌과 염화칼슘으로 분해됩니다.

염화칼슘은 두부제조 등에서 간수 대용으로 사용됩니다. 식품전문가 최낙언 씨는 “염화칼슘은 물에 들어가면 염소와 칼슘 이온으로 분해되고 칼슘은 두부 단백질과 결합하고 염소는 남는다”고 설명합니다. 또 “그 염소는 소금의 염소와 같은 거라 두부에 들어가는 양은 전혀 문제될 것 없고 칼슘이 따로 남더라고 더 먹도록 권장하는 미네랄이니 흠 잡을일 전혀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세틸렌은 단순한 질식성 가스입니다. 아세틸렌이 용해된 술이 두통과 숙취를 일으키지는 않을 겁니다. 진실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산업안전대사전’에 힌트가 나옵니다.

“순수한 아세틸렌은 색상이 없으며 방향이있지만 카바이드를 원료로 해서 제조한 것은 불순물을 함유해 불쾌한 냄새가 난다. 불순물이 있을 때는 두통, 마취한 것처럼 맥박이 느려지는 증상 등을 일으킨다.”

10. 막걸리도 막 마시면 숙취가 남죠

막걸리도 술입니다. 카바이드 막걸리가 아니더라도 많이 마시면 숙취가 남습니다. 즐겁게 마시되 절제하는 게 오래오래 술을 마시는 길입니다. 불금 잘 사르세요.

(자료)
-에코타운 블로그. 카바이드 막걸리, 거짓과 진실
http://ecotown.tistory.com/
- 신동철. <신문은 죽어서도 말한다> 다락원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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