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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윤리적 당위(當爲)'와 법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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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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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당위는 "마땅히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의무를 총론적으로 규정하는 일종의 도덕적 가치다. 가령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국민은 애국을 해야 한다"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한다" 등등이 대표적인 당위일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윤리적 당위를 배우고 그 가치체계하에서 성장하지만 현실생활은 당위를 벗어난 수많은 작은 일탈로 점철돼 있다. '마땅히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학생'들은 부모 몰래 컴퓨터 게임도 하고, 대학생인 척 위장해 19금 영화도 보러 다니고, 화장실 뒤편에서 몰래 담배도 피운다.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은 채 가족들과 놀러 가버리거나 아침에 출근할 때 마음이 급하면 빨간 신호등인데도 도로를 무단횡단하기도 한다. 따라서 포괄적 윤리규정을 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가 보더라도 크게 잘못된 행위를 구체적이고 명백하게 적시하고 사회적 토론을 거쳐 무엇을 법으로 단속할 것인지 합의를 도출하는 정치적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은 법적 구체성을 결여한 채 윤리적 당위가 갑자기 법으로 강제돼 버린 경우다. "공공적 성격이 있는 직업에서 근무하는 자는 마땅히 공인으로서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윤리적이고 포괄적인 가치를 다루는 내용이다 보니 '당위론' 그 자체에 압도돼 반드시 거쳐야 할 법적ㆍ제도적ㆍ사회형평적 측면의 실무적 논의가 생략되고 말았다.

당위법은 성격상 강한 도덕적 강제성을 지니기 때문에 그 총론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제도적ㆍ실무적 현실론을 제기하면 마치 당위 자체를 부인하거나 불법을 자행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 같아서 말 꺼내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 중 아무도 실무적인 말을 꺼내지 않고 뭉개고 있다가 갑자기 선거라는 정치적 목표 앞에서 꼭 필요한 논의를 생략해 버린 채 갑자기 법을 통과시켜 버린 것이다.

국민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사람이 아닌 언론인이나 사립학교교원, 대학교수까지 왜 갑자기 공직자에 포함되었는지, 시민단체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다른 전문직은 왜 제외됐는지, 부정청탁의 기준이 무엇인지, 아내나 남편을 경찰에 신고하라는 것이 과연 인간의 본성에 맞는 타당한 요구인지, 직무와 무관하게 100만원이라는 소액만을 기준으로 청탁과 뇌물수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지나친 것은 아닌지 등등 논의를 거쳐야 할 수많은 의문이 생략되고 보니 법을 만들자마자 개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포괄적인 당위를 법으로 만들면 두 가지 부작용을 낳게 된다. 우선 내가 원한을 품고 공격하고 싶은 대상이 법을 어기는지를 관찰해 신고하는 '파파라치 사회'가 된다. 언론에 불만인 정부, 사이가 나쁜 다른 사람, 경쟁사 등으로부터의 무고와 투서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식사접대는 3만원 이하, 경조사비는 5만원 이하라는 사회적 통념에 맞지도 않는 규정을 들이대면서 때려잡겠다고 나서면 이런저런 말썽에 휘말리기 싫은 사람들은 업무 관련자들을 아예 만나지 않고 기피해 버리는 '기피사회'가 될 것이다.

지나치게 촘촘하거나 포괄적인 법 규정은 중장기적으로 수많은 범죄자를 양산해 공범의식을 낳고 법의식을 약화시킨다. 모두를 단속할 수 없으니까 검찰과 경찰이 특정 목표만 타깃으로 법 적용을 하는 등 악용의 소지도 발생한다.

김영란법에 대해 국회는 뒤늦게 하위 법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위법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말이 있지만, 이 경우는 외양간이라도 반드시 고쳐야 한다. 윤리의식은 윤리의식으로 두고 법은 보다 구체적이고 누가 보기에도 문제가 되는 최소한의 행위를 단속하는 것으로 범위를 좁혀 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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