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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의 뿌리 '공주'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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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공무원서 '동학정신' 전도사로…이걸재 前석장리박물관장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동학(東學)은 한민족의 자존심이며 정신이어야 합니다."

이달 초 현역에서 은퇴한 뒤 소리꾼으로, 공연 기획자이자 극작가로, 향토민속 채록자로 그동안 쌓아온 저변을 '즐거이' 넓히고 있는 이걸재 전 석장리박물관장은 동학을 '혁명'으로 한정하는 것을 경계한다. '공무원 신분으로는 하기 어려웠던 말'도 이제 맘껏 할 수 있게 됐다는 이 전 관장은 "동학은 혁명으로 희생된 분들의 유족이나 이와 관련된 몇몇 지역, 자치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다"고 말했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아 이 전 관장에게 우리가 동학을 '바로' 기억해야 할 이유를 들어봤다.
이걸재 전 석장리박물관장

이걸재 전 석장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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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전쟁'을 넘어 민족의 사상으로= 이 전 관장은 고향인 공주에 평생 뿌리를 내리며 민족의 정신문화를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알려왔다. 석장리박물관장으로 '출퇴근'할 때도 향토의 사료를 찾아 매달리고 이를 승화시키는 작업을 이어왔다.
"동학과 관련해 지금은 '우금치 전투'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나고 있어요. 동학의 첫 회합이 있었던 보은, 삼례, 공주는 수운(水雲) 최제우 선생이나 해월(海月) 최시형 선생이 주목했고 활동하신 몇 안 되는 고장이었는데 말입니다. 정신으로의 동학, 민족 종교로의 동학은 어느 고장보다 공주에서 일찌감치 시작됐으며 이곳 사람들이 비폭력 운동부터 평등사상으로 나아가려는 시대적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묻히고 우금치 전투만 부각되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 같았어요."

이 전 관장은 우금치 전투 후에 공주에서 어느 곳보다 심한 '동학 탄압'이 있었다는 데 주목했다. 그냥 묻어 둘 수 없는 정신문화적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믿음으로 종횡무진 사료를 찾아다녔다. 조사 과정에서 우금치 전투 후 공주에서 관군에 의해 현장 사살된 동학도의 사례를 채록하기도 했다. 그는 "공주 계룡산 일원의 신흥 종교 대부분의 뿌리가 동학이었다는 점에 비춰보면, 공주가 동학의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다른 어떤 고장보다 아픔을 많이 간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념식'만 남고 '정신'은 사라져=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이를 기념하는 문화행사와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전 관장은 이러한 움직임이 '정신'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동학이 관련 예산 때문에 특정인이나 지역의 전유물이 돼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기념식으로 대변되는 동학의 각종 행사는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죠."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이야기를 꺼냈다. 시골 훈장으로 살아가던 백범 선생이 동학을 계기로 민족과 세상을 밝히고자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수운 선생이나 해월 선생도 이 같은 맥락에서 기억돼야 한다고 했다. 이 전 관장은 "동학이 '민족의 종교'이기를 희망하신 그들은 서구 열강의 위협에 대응하지 못하고 기울어가는 조선에 정신적인 빛을 밝히려 했던 것"이라며 "이러한 열망과 의지가 기억되지 않은 채 '갑오년의 농민 봉기'로 한정된 동학이 10년, 20년 후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이걸재 전 관장이 쓰고 연출한 '동학'의 공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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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사회, '사람이 곧 하늘'임을 알아야= 올해는 한국 사회에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고 갈등과 충돌도 잦았다. 이 사회의 병든 곳에 동학의 정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물었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동학의 기본 사상은 세계 정신철학의 기준인 휴머니즘과 닿아있는 것입니다. '인내천'의 근본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특정인이 아니라 어려움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모든 사람을 중히 여기는 마음이 현대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합니다. 정부도 동학 관련 사업을 이 기준에 맞춰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요즘 하루에 두어 시간은 소리 공부를 하며 보낸다. 지역 어른들과 함께 만들어 공연했던 우리문화 종합극 '동학'을 재공연할 계획으로 대본을 손질하기도 한다. 직접 만들어 불렀던 '동학천가(東學天歌)' '운집가(雲集歌)' '수운 선생의 격검(擊劍)' 등을 매만져 청소년들 앞에서 재미있게 부를 수는 없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동학 연구를 비롯해 소리, 문학, 민속연구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로 활동하게 한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스스로 세 가지 질문을 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이 일이 세상에 꼭 필요한가?'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인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가?' 공연으로, 소리로, 글로 동학을 바로 알리고자 하는 그가 동학을 놓지 않는 이유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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