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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아프니까 인생이다

최종수정 2014.11.21 06:23 기사입력 2014.11.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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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니 청춘들이 발끈한다. 아프면 환자지 왜 청춘이냐고. 아프면 치료를 해야지 왜 견뎌야 하냐고. 빛나는 졸업장 가슴에 안고 교문을 나서는 발걸음 가뿐하지만 어쩌랴, 교문 밖은 삭풍이 몰아치는 사나운 광야. 그 광야에서 이를 악 물어봐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와 근심이 어린 영혼들을 사포질해댄다. 돌아보니 저 교문 안도 과연 낙원은 아니었다. 학점에 토익에 스펙 쌓느라 머리가 세고 어깨가 굽었다.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춘은 이미 늙고 병들었다.

병든 몸 이끌고 뛰어든 취업 전선은 총탄과 포탄에 전사자가 널렸다. 가까운 선배 아들이 그렇다. 알 만한 대학 졸업반, 평균 학점 3.5, 어학 연수에 기업 인턴까지. 몇 곳에 응시했지만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성인이 됐는데도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캥거루' 아들의 처지가 선배는 안쓰럽다. 그 선배의 친한 친구의 딸은 '인구론(인문대 졸업생 구십 퍼센트는 논(론)다)'이다.

운 좋게 취업 전선에서 살아 남아도 이번에는 연애와 결혼이 청춘을 고문한다. 남자는 키 177㎝, 연봉 5000만원, 직업은 공무원, 여자는 키 163㎝, 연봉 4000만원, 직업은 교사ㆍ공무원쯤 해줘야 사람대접 받는다고 어느 결혼 정보 회사는 야멸차게 말한다. 키 작고, 연봉 적으면 음양의 조화도 과분하다는 말투다. 어찌어찌 결혼을 해도 아이 낳아 키우기 겁나 출산을 미루기 일쑤고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이다.

한평생 내 가족, 우리 회사를 어깨에 짊어진 40, 50대 중년들도 시름이 깊다. 얼마 전까지 건재했던 어느 기업 임원이 찬바람 불기 전 퇴출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 또 연말이구나' 싶은 것이다. 재계약을 앞두고 기업 임원들이 밤잠을 설치는 시즌이 도래한 것이다. 그 임원의 자식이 캥거루족이거나 인구론이라면 온 가족이 맞아야 하는 우울한 연말은 어쩌란 말인가. 이 와중에 실업자는 거의 없고, 월세는 매달 떨어지고, 빈부격차는 날로 해소된다는 정부의 유체이탈식 통계자료는 서민들의 늑골을 들쑤신다.

그래서 말이지, 사실은 청춘만 아픈 게 아니다. 우리 인생이 아프고 서럽고 외롭다. 대한민국의 삶이 팍팍한 것이다. 그러니 이 겨울 서로 보듬어 체온을 나누면서 아픔을 달래야 하지 않을까.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으로, 상처가 아닌 희망으로 삭풍을 견뎌야 하지 않을까. 아픈 인생에 플라시보라도 한 사발씩 나눠 마셔야 하지 않을까.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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