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몸 이끌고 뛰어든 취업 전선은 총탄과 포탄에 전사자가 널렸다. 가까운 선배 아들이 그렇다. 알 만한 대학 졸업반, 평균 학점 3.5, 어학 연수에 기업 인턴까지. 몇 곳에 응시했지만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성인이 됐는데도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캥거루' 아들의 처지가 선배는 안쓰럽다. 그 선배의 친한 친구의 딸은 '인구론(인문대 졸업생 구십 퍼센트는 논(론)다)'이다.
한평생 내 가족, 우리 회사를 어깨에 짊어진 40, 50대 중년들도 시름이 깊다. 얼마 전까지 건재했던 어느 기업 임원이 찬바람 불기 전 퇴출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 또 연말이구나' 싶은 것이다. 재계약을 앞두고 기업 임원들이 밤잠을 설치는 시즌이 도래한 것이다. 그 임원의 자식이 캥거루족이거나 인구론이라면 온 가족이 맞아야 하는 우울한 연말은 어쩌란 말인가. 이 와중에 실업자는 거의 없고, 월세는 매달 떨어지고, 빈부격차는 날로 해소된다는 정부의 유체이탈식 통계자료는 서민들의 늑골을 들쑤신다.
그래서 말이지, 사실은 청춘만 아픈 게 아니다. 우리 인생이 아프고 서럽고 외롭다. 대한민국의 삶이 팍팍한 것이다. 그러니 이 겨울 서로 보듬어 체온을 나누면서 아픔을 달래야 하지 않을까.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으로, 상처가 아닌 희망으로 삭풍을 견뎌야 하지 않을까. 아픈 인생에 플라시보라도 한 사발씩 나눠 마셔야 하지 않을까.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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