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 병합은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침략이다"
1880년 오늘은 일본인 검사·변호사였으면서도 일제하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한국인의 인권을 위해 앞서 싸웠던 후세 다츠지(布施辰治)가 태어난 날입니다.
서슬 시퍼런 일제하에 일본인 이었으면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은 분명 특이한 일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 이었을 테니 그가 얼마나 많은 비난과 위협에 시달렸을지는 뻔합니다. 당국에 요주의 인물로 지목된 것은 물론 2년간 옥살이까지 했습니다.
일본의 한국 병합을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침략'으로 규정한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민중 운동을 적극 지지합니다. 1911년에는 조선의 의병운동을 다룬 논문 '조선독립운동에 대하여 경의를 표함'을 발표해 일본 경찰의 조사를 받습니다.
1919년에는 2.8 독립선언으로 체포된 조선 유학생들의 변론을 맡았으며 1920년에는 조선 민중의 해방운동에 노력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 관동대지진 때는 조선인 학살사건이 일본군 계엄사령부와 경찰에 의한 ‘조선인 폭동조작’이었음을 비판하다가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구요.
1946년에는 해방된 우리나라를 위해 ‘조선건국 헌법초안’을 만들 정도로 한국에는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가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한동안 미뤄져 오다 2004년에야 우리 정부로부터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국가를 초월해 오로지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에 기초해 평생을 살다간 후세 다츠지의 삶에 국가를 초월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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