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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무당 기운(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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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처음부터 사기를 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합니다. 신기(神氣)가 내려와 온몸이 그것으로 충만하던 때는, 자기도 모를 그 기운이 지혜와 힘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족집게 소리를 듣고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할 무렵에 문득 그 기운이 소진되고 마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름은 잔뜩 높아지고 자신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는 더없이 커졌는데, 정작 발휘해야할 안의 기운이 사라지고 없을 때, 그는 하는 수 없이 '있는 척'을 하게 됩니다. 허풍을 치고 거짓 쇼를 합니다. 이것을 마구 욕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가 한때 지녔던 에너지가 바닥난 이들이, 과거의 이름에 기대어 뻥과 구라로 연명하는 것이 어디 무당집 만의 일이겠습니까.

글쓰는 이들도 그러하고, 명망가들도 그러하고, 학자들도 그러합니다. 젊은 시절 천재로 군림하던 이들도 그러하고, 빼어난 솜씨를 지닌 장인이나 예술가들도 허풍을 동원해야 하는 때가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무당도 신기를 받았을 때 그 기운을 자기의 기운으로 제대로 받아들여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도 합니다. 관상쟁이나 사주쟁이도 그렇습니다. 그 기운을 그냥 쓰면서 탱자탱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운의 원천과 통하는 내공을 쌓는 것이 진짜 무당, 진짜 도사, 진짜 점쟁이의 경지라고도 합니다.
어찌 이런 이들만 그렇겠습니까? 시를 쓰는 이도 그 주어진 천재성이 다 떨어지고, 연주를 하는 일도 그 영감이 다 달아나버리고, 젊은 날의 빼어난 편집기자도 그 샘솟는 창의성들이 희멀금하게 되어갈 때, 그때 내놓는 '무당 기운'이 진짜 성취이며 위대한 인간의 탑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공짜 기운으로 날아다니던 시절보다, 기운들이 체질 속으로 스며들어 인간을 이루고 에너지를 자체발광하는 그 경지가 바로 위인의 경지가 아닐까 합니다. 늙어서 허풍쟁이가 되느냐, 아니면 자가발전소가 되느냐의 차이는, 젊은 날의 무당 기운을 어떻게 썼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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