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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프론티어]'까마귀 세상'서 날아오른 핑크빛 여인(女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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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 달고 산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사진=최우창 기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사진=최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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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스스로 시운(時運)을 타고 났다고 말한다. 일제 탄압과 동족상잔의 6ㆍ25 등 질곡의 역사를 살짝 비켜섰다고 강조한다. 1955년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해 3 학기를 다녔다. 이후 체류비 등 전액 장학금을 받아 미국 웰즐리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 여성으로 처음으로 하버드대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 최초 여성 대사로 주 핀란드와 러시아 대사를 역임했다. 팔순의 나이를 앞두고 있는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78)의 이야기이다.

"시운을 잘 타고 난 것 같다. 1936년생인데 해방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일본어가 아닌 한글로 공부한 1세대이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이 교수는 스스로를 '축복받은 세대'라고 위치시켰다. 그의 전 세대들은 숱한 고초를 당했는데 자신은 나이가 어려서 피해를 덜 봤다는 것이다. 그런 질곡의 역사를 살짝 피해갔다고 자신을 평가했다. 이 교수는 "공부하는데 손해도 안보고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仁)을 새기다=이 교수 집안은 전통적 유교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성균관에서 살았다. 유림이었다. 상강오륜과 남녀유별이 엄격했다.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말대꾸하는 것은 '큰일 날' 일이었다. 그는 책을 좋아했다. 책읽기에 몰입하다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 할머니가 부를 때 곧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혼이 나던 시절이었다.

남녀가 유별했지만 교육만큼은 평등했다. 가르치는데 차별을 두지 않았다. 6남매 중 첫 딸로 태어난 이 교수는 할아버지로부터 '인(仁)'을 받았다. 유학에 있어 '인'은 무척 큰 의미다. 유학의 모두를 설명해 준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선비 집안에서 배움만큼은 차별받지 않았다. 해방되고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당시 모범학교로 불렸던 사범대 부속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고 차별을 덜 받고 자란 셈이다."
자신은 시대의 운을 잘 타고 났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여성들의 경우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옛날보다는 줄어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하다"며 "좋은 사회일수록 남성과 여성 양쪽 기능을 그때그때 사정에 알맞게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고위급 정치인 40%가 여성인 핀란드=그는 1996년 주 핀란드 대사로 부임했다. 김영삼 정권시절이었다. 첫 여성 대사였다. 그가 첫 여성 대사가 된 데는 1995년 베이징여성대회의 영향이 컸다. 당시 손명숙 여사,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등이 참석한 큰 행사였다. 이곳에서 낯을 들기 부끄러운 일이 터졌다. 경제지수로 보면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권에 들었다. 이와 함께 여성대회에서 전 세계 '여성세력화지수'가 발표됐다. 각국에서 중요한 자리에 여성이 어느 정도 진출해 있는지 가늠하는 지수였다. 우리나라는 110개 국가 중 당당히(?) 91위를 차지했다. 국제적으로 창피하고 우리나라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이 교수가 첫 여성대사로 발탁된 것에는 이런 사정과 맞물려 있다. 이 교수는 핀란드 대사 재임 시절을 떠올리며 "당시 내가 대사로 취임했을 때 핀란드에서는 외교부 장관, 국회의장과 부의장 모두 여성이었다"며 "고위급 정치인 중 40%가 여성들의 몫이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장관이었던 타르야 할로넨은 이후 대통령까지 지냈다. 할로넨 대통령은 헬싱키 노동자 지역에서 태어나 지방정치부터 시작했다. 이후 중앙 무대로 나와 대통령을 12년 동안 지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 핀란드였다고 강조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사정은 이 교수 표현대로라면 '까마귀 세상'이었다. 100여명이 모이는 중요한 모임에 가보면 여성은 2~3명에 불과했다. 이 교수는 이런 자리에 갈 때마다 "까마귀 세상에 왔네!"라는 농담을 건넸다. 남성들은 이 농담을 들으면 듣기 싫어했다. 하나 같이 까만 양복을 입고 있고 그 무리에 몇몇 여성만 보인다는 의미였다.

◆마침내 '전공 영역'으로=그의 전공은 서양사학이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역사 전문가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 있던 대사들은 대부분 물갈이되는 것이 관례다. 이인호 교수는 김영삼에서 김대중 정권으로 정치권력이 변했지만 핀란드에서 러시아로 날아갔다. 마침내 자신의 전공 분야와 어울리는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반기고 환영할 일이었지만 고충이 컸다. 그때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받는 등 경제위기 시기였다. 예산이 없다보니 좋은 인맥과 계획이 있어도 러시아에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 교수는 "핀란드 대사로 부임하는 것도 서울대 교수직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모험이었다"며 "러시아에 부임했는데 정작 뒷받침돼야 할 예산이 없으니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핀란드와 러시아 대사를 지낸 배경에는 자신이 먼저 길을 터줘야 후배들이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강했다. 여성계에서도 그를 독려했다. 여성계에서는 "(이 교수가)하면 잘 할 것"이라며 "여성계의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권했다.

그는 핀란드 대사를 지낸 것을 일종의 '테스트'라고 받아들였다. 당시 공로명 외교부 장관은 "유럽의 작은 국가 중 하나를 선택하면 좋겠다"고 권했다. 이 대사는 상대적으로 러시아 연구 자료가 풍부한 핀란드를 선택했고 핀란드에서의 경험이 러시아로 갈 수 있었던 배경이었었다.

이 교수가 대사로 있던 시절 러시아에서 우리나라 외교관이 추방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에서는 "여자가 대사이고 경험이 없다보니 이런 사건이 빚어졌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교수는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보도까지 나왔는데 참 부끄러운 현실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종교와 계급 분쟁의 경우 서로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융통성은 있다"고 지적한 뒤 "반면 남녀차이는 생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융통성이 없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남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굳건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 러시아를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문화, 미국 유학시절의 경험, 러시아 대사로서 활동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줬다"며 "이런 다양한 시각이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인식의 폭을 넓히는 자양분이 됐다"고 평가했다.

◆비공식 거래를 경계하라=그는 여성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다. 다만 손해는 많이 봤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비공식 네트워크에 있다. 이 교수는 "이 정도의 경력이면 남성들의 세계에서는 동창모임 등 비공식 네트워크가 상당히 많을 것"이라며 "여성이다 보니 그런 네트워크가 없다"고 말했다. 70~80년대 초로 기억한다. 미 대사관에서 우리나라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15명을 초대한 적이 있다. 15명이 오찬을 위해 미 대사관에 모였는데 모두 뉴스나 혹은 다른 경로를 통해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정작 얼굴을 보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여성들은 비공식 네트워크에 취약했다. 이런 비공식 네트워크 대신 이젠 공식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익과 관련되는 중요한 결정은 사적 통로가 아니라 정식 통로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는 사적 연결고리를 통해 중요한 정책 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비리와 온갖 부정이 저질러졌다"며 "여성이 사회에 많이 참여하게 되면 이런 사적 연결고리의 부작용이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맑아지고 투명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성들의 저녁에 벌어지는 '먹고 마시는 자리'에 참여해 보면 '3중 고통'에만 시달렸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런 경우 시간 버리고, 공금 축내고, 체력 낭비하는 3중 고통이 심했다"며 "여성들의 책임직 참여가 늘어나면 사회는 더 밝고 깨끗해 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시운(時運)을 타고 난 자신은 그동안 힘든 일은 별로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치시킨 이 교수. 그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더 밝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능력을 알아주고 사회 곳곳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이인호 교수는=▲1936년 서울 출생, 1952년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 입학, 1955년~ 1956년 서울대 사학과 3학기 수학, 1967년 하버드대 서양사 박사, 1979년~ 1996년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1996년 주핀란드 대사, 1998년 주러시아 대사, 2011년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2014년 서울대 명예교수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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