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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보고서 55]5-1. 죽어도 말하기 싫은 그 얘길 자꾸 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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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등록·조사시스템은
신고자들 대부분 고령, 정신질환 앓기도
90년대 간단한 서류심사 땐 무더기 접수


김영중 작가의 작품 '붉은 그림자'

김영중 작가의 작품 '붉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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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지난 8일 경북의 박○○(92) 할머니가 추가 등록된 것으로 지난주 뒤늦게 알려지면서 현재 정부에 공식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238명(생존자 55명)으로 늘었다. 박 할머니는 현재 대구의 한 요양원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위안부 피해 등록자 중 84%(200명)가 1990년대에 신고를 했다. 특히 1993년에는 153명이 한꺼번에 등록했다(표 참조). 이때는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이후 신고 센터가 개설되는 등 여러 가지 조치가 있었던 시기였다. 정부가 피해자로 등록된 사람에 한해 제공하는 생활안정지원금도 이때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위안부 피해 신고·등록은 어떤 절차로 진행될까.

◆정부 차원의 면담 대신 시민단체가 면담= 2001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위안부 피해자 등록 업무를 이관받은 여성가족부는 홈페이지에 피해자 등록절차를 적시해 놓고 있다. 우선 국내거주자의 경우 거주지 시·군·구에 '대상자 등록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국외거주자는 재외공관에 등록신청을 한다. 신청서에는 신상정보 외에 강제동원 상황, 현지 생활, 귀환 상황 등을 기입하는데 조사 단계에서 이를 확인하는 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인터뷰 횟수 등 조사지침은 따로 없다. 신고자 건강상태에 따라 면담 가능 여부와 횟수가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여가부 측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대거 등록한 1990년대 피해자 등록시스템은 어땠을까. 지금과 달리 당시엔 정부 차원의 면담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술서, 사진, 목격자 증언 등이 담긴 서류로 서면심사만 거쳐 피해자 등록이 진행된 것이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심의위원회가 1993년부터 존재했지만 서면심사 진행 방식, 면접 진행 여부 등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 차원의 면담을 대신한 것은 한국정신대연구소 등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의 면담이었다. 여가부는 2004년 12월부터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지원위원회)'에 이 업무를 의뢰했다.

조사과정 중 피해자 인터뷰는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업무에 속한다. 조사자를 붙잡고 동원 상황, 위안소 생활 등 아픈 기억을 조목조목 묻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치매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정확한 증언을 듣기란 어렵다.

근래에 등록한 박○○ 할머니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박 할머니는 손녀가 신고해 면담을 진행했는데 할머니는 "9살 때 일본으로 갔다", "전쟁을 만나 평생 고생했다" 등의 발언은 했지만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심의위원회에서는 할머니의 피해자 여부를 결정하는 데 막판까지 고심했다. 하지만 손녀는 할머니의 우울증을 치료한 의사의 소견서 등 의료기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또 잠꼬대 등을 유심히 들어보면 위안부 피해자임을 암시하는 단어를 내뱉는다고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박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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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등록시스템의 한계= 실제 피해자가 아닌데도 정부 지원금 등 혜택을 노리고 허위신고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피해자 등록자 중에 이야기를 풀어놓기 고통스러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친구나 친척의 경험을 자기가 겪은 일인양 등록해 놓고 이것이 발각될까봐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구체적인 피해상황을 진술하기를 거부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보다 정확한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정신대연구소는 조사지침을 마련해 놓고 있다. 50여명의 피해 할머니를 인터뷰했던 여순주 연구원은 "피해자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팩트들을 모으는 데 주력한다"며 "가령 일본군 규모와 위안부 관리시스템, 위안소 묘사, 위안소 생활을 중심으로 한 질문의 답변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현재 여가부는 14명의 심의위원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인터뷰 등 조사활동을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를 검토하고 필요시 신고자 가족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허위 신고자를 걸러내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과거보다 절차가 까다로워진 셈인데 실제 지원위원회의 위안부 처리현황(2005년 2월~2008년 6월)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총 386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됐지만 피해자로 등록된 사람은 22명뿐이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신고절차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로 커밍아웃하기로 마음먹은 할머니들은 1990년대 이미 등록을 마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원시기를 따져보면 현재 80~90대의 고령자들인데 과거를 묻고 싶어하지 이제와서 굳이 피해자라고 밝히겠느냐는 것이다. 2012년 피해자 등록을 한 박숙이(92) 할머니는 "손자·손녀가 취업, 대학입학 등으로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피해자임을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위안부였다'는 주변의 시선과 편견을 본인뿐 아니라 가족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생존' 피해자 발굴에만 급급= 동원된 위안부 숫자가 수만~수십만명으로 추정되는 데 비하면 이를 신고·등록한 피해자 수는 극히 적다. 생존자 위주로 피해 신고가 이뤄진 때문이다. 정혜경 지원위원회 과장은 "생존 피해자 발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재의 실태조사 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 쪽 피해자들 위주로 실태가 파악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00년대에 초반 정부는 실태조사에 착수하면서 중국을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당연히 중국으로 끌려간 피해자들의 사례가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동남아 각지에 퍼져 있었던 위안소는 각 지역마다 운영방식과 분위기가 달랐다. 가령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피해자들은 10대로 연령대가 낮은 반면 태국 등 동남아 지역에 끌려간 이들은 20대 등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았다. 연령을 고려하면 피해자들 대부분은 이제 고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생존 피해자뿐 아니라 사망 피해자 등으로 조사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사과정에서 무리한 인터뷰 진행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근 인터뷰가 진행됐던 한 할머니는 알코올중독 증세와 우울증, 치매를 같이 겪고 있는 중증환자였다. 치매가 심각해 남자조카만 알아볼 정도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머니는 피해 사실을 번복하기 일쑤였는데 여가부는 심리치료사까지 동원해 가며 한 달 동안 조사를 진행했다. 물론 피해자임을 입증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지만 해도 너무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군복 입은 사람 있었어요?'라는 질문에 눈빛 등 할머니의 반응을 보고 판단했는데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기획 시리즈 진행 중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명이 공식 인정돼 시리즈 제목을 '위안부 보고서 54'에서 '위안부 보고서 55'로 바꿉니다.

▶'위안부 보고서 55' 온라인 스토리뷰 보러가기: http://story.asiae.co.kr/comfortwomen/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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