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러시코프 '현재의 충격'
한 젊은 여자가 있다. 그녀는 근사한 호텔 카페에 앉아 있다. 음악을 듣거나 괜찮은 남자들을 찾는 눈치는 아니다. 계속해서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그리곤 여기저기 문자를 보낸다. 문자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도시의 사람이다. 심지어는 외국인들도 있다. 휴대전화 액정 하나로 그녀는 지금 이 자리가 아닌 곳에 있다. 바로 파티에 가서 사랑을 나눌 짝을 찾는 대신 그녀는 다른 도시의 낯선 이들과 손가락 게임을 하고 있다. 그녀는 그녀와 공유되지 않은 삶을 공유하느라 열중한다. 따라서 다른 도시의 사람들과의 관계속에 그녀가 산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고 디지털과 소프트웨어의 발달은 시공간을 재배치, 재배열했다. 우리의 기억 장치 또한 대뇌의 뇌세포가 아니라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로 바뀌었다. 우리의 인지 능력도 현재라는 시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다. 모두 같은 시간에 살지도 않는다.
1970년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이라는 저술에서 "우리 시대에는 변화의 가속화 그 자체가 하나의 기본 요소"라고 갈파했다. 현대사회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기념비적인 경구다. 기술의 변화를 적응하지 못 하는 개인과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며 서로 다른 시간을 영위하는 디지털 분열 상태에 놓여 있다. 디지털 분열이란 미디어와 기술이 우리를 동시에 한 곳 이상의 장소에 머물게 하거나 한 장소에서 다른 시간을 살도록 하는 현상이다. 이것이 '현재의 충격'이다. 앨빈 토플러 저술 '미래의 충격' 출간 43년 후 등장한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저술 '현재의 충격'은 토플러가 보지 못한 수십년 후의 세상, 그 왜곡된 현상을 적나라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현재속에서 적정한 보폭과 전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라'고 충고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왜곡이 단순히 '정보 과부하'로 취급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테크놀로지 진보에 따른 ‘비인간화’ 사례로 꼽히는 것은 ‘현재 충격’의 악영향으로 거론된 것 중 몇 가지에 불과하다. 지금은 우리 주변의 미디어와 문화가 변했다. 결국 삶이 달라졌다. 이에 저자는 우리는 우리를 내습하는 정보와 싸우며 시간과 변화 따라잡기라는 이상한 게임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그게 뭐든 테크놀로지가 사람에게 행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테크놀로지를 통해 서로 서로에게 무슨 일을 행하기를 선택하느냐에 더 관심 있다"고 설명한다. '조작된 현재', 즉 그것들은 인간의 지능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런 충격적 삶의 방식은 그저 단순한 충격이 아니다. 이 책은 이제 디지털 접촉을 피하고 인간적 대면을 우선하며, 속도를 삶의 우위에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박종성·장석훈 옮김/청림출판 출간/값 1만6000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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