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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사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삶을 꾸릴 건가 ?"‥디지털 쇼크

최종수정 2014.08.18 07:43 기사입력 2014.08.1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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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시코프 '현재의 충격'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현재의 충격'

'현재의 충격'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예지력이 뛰어난 월가 헤지펀드 매니저다. 하지만 그는 항상 한발 늦게 거래한다. 남자가 주문을 내자 이미 성능 좋은 컴퓨터로 무장한 대형증권사 트레이더들이 물량을 모두 선취해 버린 탓이다. 그가 매수했을 때는 가격이 오르고 마진도 바뀌었다. 그래서 그는 늘 다른 사람의 과거속에서 거래한다. 다른 경쟁자들의 현재는 그가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즉 그의 현재는 다른 사람의 과거이며 다른 사람의 현재는 그저 곧 소멸될 그의 미래일 수 있다.

한 젊은 여자가 있다. 그녀는 근사한 호텔 카페에 앉아 있다. 음악을 듣거나 괜찮은 남자들을 찾는 눈치는 아니다. 계속해서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그리곤 여기저기 문자를 보낸다. 문자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도시의 사람이다. 심지어는 외국인들도 있다. 휴대전화 액정 하나로 그녀는 지금 이 자리가 아닌 곳에 있다. 바로 파티에 가서 사랑을 나눌 짝을 찾는 대신 그녀는 다른 도시의 낯선 이들과 손가락 게임을 하고 있다. 그녀는 그녀와 공유되지 않은 삶을 공유하느라 열중한다. 따라서 다른 도시의 사람들과의 관계속에 그녀가 산다.

우리가 아는 지금은 다른 사람의 과거일 수 있다. 지금 이 자리라는 개념도 모호하다. 우리들의 시간과 공간이 왕창 뒤엉켜 돌아 간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기술에 갇혀 있다. 단순히 세상이 빨리 돌아간다고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같은 시간 안에서 누구에게는 바로 현재 일어나야할 일이 다른 이에게는 과거가 돼 있다. 내가 놓여 있는 자리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아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고 디지털과 소프트웨어의 발달은 시공간을 재배치, 재배열했다. 우리의 기억 장치 또한 대뇌의 뇌세포가 아니라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로 바뀌었다. 우리의 인지 능력도 현재라는 시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다. 모두 같은 시간에 살지도 않는다.

1970년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이라는 저술에서 "우리 시대에는 변화의 가속화 그 자체가 하나의 기본 요소"라고 갈파했다. 현대사회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기념비적인 경구다. 기술의 변화를 적응하지 못 하는 개인과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며 서로 다른 시간을 영위하는 디지털 분열 상태에 놓여 있다. 디지털 분열이란 미디어와 기술이 우리를 동시에 한 곳 이상의 장소에 머물게 하거나 한 장소에서 다른 시간을 살도록 하는 현상이다. 이것이 '현재의 충격'이다. 앨빈 토플러 저술 '미래의 충격' 출간 43년 후 등장한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저술 '현재의 충격'은 토플러가 보지 못한 수십년 후의 세상, 그 왜곡된 현상을 적나라하게 분석하고 있다.
'현재의 충격'은 한마디로 '시공간에 대한 왜곡'이다. 저자는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 '미디어 바이러스' 등의 저술로 유명한 미디어 이론가로 기술 변화가 삶과 시간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인간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했는지를 보여준다. 디지털 분열이 가속화되는 세상에서는 서사가 사라지고, 리얼리티쇼가 범람한다. 이에 대한 변화 양상을 살펴 보면 "과도하게 시간을 압축하며, 무모한 시도를 계속 한다", "비슷한 결과물이 재생산된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환타지가 범람한다" 등으로 요약된다.

이에 저자는 현재속에서 적정한 보폭과 전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라'고 충고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왜곡이 단순히 '정보 과부하'로 취급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테크놀로지 진보에 따른 ‘비인간화’ 사례로 꼽히는 것은 ‘현재 충격’의 악영향으로 거론된 것 중 몇 가지에 불과하다. 지금은 우리 주변의 미디어와 문화가 변했다. 결국 삶이 달라졌다. 이에 저자는 우리는 우리를 내습하는 정보와 싸우며 시간과 변화 따라잡기라는 이상한 게임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그게 뭐든 테크놀로지가 사람에게 행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테크놀로지를 통해 서로 서로에게 무슨 일을 행하기를 선택하느냐에 더 관심 있다"고 설명한다. '조작된 현재', 즉 그것들은 인간의 지능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런 충격적 삶의 방식은 그저 단순한 충격이 아니다. 이 책은 이제 디지털 접촉을 피하고 인간적 대면을 우선하며, 속도를 삶의 우위에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박종성·장석훈 옮김/청림출판 출간/값 1만6000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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