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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방한]강우일 주교 환영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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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첫날, 청와대를 예방하고 '공직자 및 외교사절단과의 만남'에서 '한반도 평화'를 역설한데 이어 '한국 주교단과의 '만남'을 가졌다.

5시30분께 교황은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 주교단 20여명을 만나 사목 방문으로는 첫 일정을 진행했다. 교황은 천주교 중앙회에 도착해 7층 소성당으로 올라가 주교회 상주 사제들과 수녀들,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사제들과 인사를 나누고, 4층 강당으로 옮겼다. 이 자리에서 교황방한위원장인 강우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장으로부터 환영 인사를 했다.
강 주교는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교종께서 이 땅에 하느님의 복을 기원해 주시고, 평화를 향한 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크나큰 소망이 현실로 이뤄지도록 풍성한 축복과 지혜를 나누어 주시기를 청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 주교는 남북 분단 등 한국 사회 현실을 언급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우리는 (교황) 성하 앞에 자랑하고 축하받기보다는 당신의 위로와 격려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백성"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또 "어느 때보다 같은 시민들 사이, 같은 민족 사이에 나눔과 화합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 전체가 민족들 간의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며 교황의 방한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한국 주교들에게 이탈리아어로 연설하고,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한 뒤 6시30분께 마무리했다. 다음은 강우일 주교의 환영사 전문이다.
- 다 음-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종께,
무엇보다도 더위가 제일 심한 이 한여름에 휴가도 마다하시고 머나먼 한국 땅에까지 찾아주심에 한국의 모든 신자들과 주교들을 대신하여, 그리고 많은 한국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성하의 아버지다운 마음과 사랑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의 모든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많은 한국 국민이 성하를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려 왔습니다. 이 땅에는 1984년과 1989년에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방문해 주셨는데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세 번째로 또 방문해 주시니 저희는 이 특별한 방문의 은총을 허락하신 주님의 섭리에 한편으로 너무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 그 섭리가 지향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는 한국 교회가 다른 나라 교회에 비해서 특별히 많은 것을 이루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종의 자리에 오르신 다음 그 동안 찾아 나서신 방문 여정을 따라가 보면 큰 업적을 이룬 공동체를 치하하고 칭송하기 위해서 가신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힘들어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 갈등과 고뇌가 풀어지지 않는 곳을 찾아가셔서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기 위한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이곳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고 66년이 흘렀습니다. 1950년에 시작되어 3년 동안 150만 명의 사망자와 360만 명의 부상자를 낸 참혹한 남북 간의 전쟁 이후 전투는 오래 전에 그쳤지만 남북은 아직도 정전 상태에 있고 군사 분계선 양측에는 가공할만한 무기를 서로 배치하고 언제라도 전투를 재개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1천만 명이 넘는 가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 반영구적인 이별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66년 동안 남과 북의 주민들은 한 민족이고 한 언어를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정치 체제가 다르고 사회적 이념이나 경제적 상황도 다르고 문화적 이질감도 갈수록 커져서 이제 갑자기 통일이 된다 하여도 우리가 한 형제 한 이웃으로 반갑게 인사하고 따뜻하게 끌어안을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과 우려가 앞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에서 세계의 열강들이 격돌하는 꼭지점이기도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동북아의 각 나라마다 국가주의적 경향이 증대되어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워서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기 위해 무력증강에 갈수록 더 많은 지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무력으로는 아무런 해결도 얻을 수 없는데 말입니다. 동북아시아는 자국만의 번영이 아니라 함께 공영하는 공존의 이상과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의 각 나라는 함께 협력하고 보완하면 얼마든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지혜와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성하가 방문해 주신 한국 사회는 국내적으로는 다른 개발도상국이 부러워할 정도로 지난 반세기 동안 급속한 산업화, 민주화와 복음화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급속도의 변화는 적지 않은 부작용과 치유되지 않은 많은 상처를 동반하였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로 국가 전체는 부를 축적하여도 낙수 효과는 없고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어 많은 시민들이 일자리 불안과 사회보장제도의 부족으로 죽음에 이르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교회도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복음적인 교회공동체를 만들었는지를 성찰하면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우리는 성하 앞에 자랑하고 축하받기보다는 당신의 위로와 격려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백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백성은 어느 때보다 같은 시민들 사이, 같은 민족 사이에 나눔과 화합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북아시아 전체가 민족들 간의 평화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교종께서 이 땅에 하느님의 복을 기원해 주시고, 평화를 향한 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크나큰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풍성한 축복과 지혜를 나누어 주시기를 청원하며 한국에 체류하시는 동안 저희들의 자녀다운 마음과 정성을 기쁘게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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