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광객들은 백조의 성을 좋아한다. 영화 '미녀와 야수'의 무대로서 디즈니랜드에 영감을 준 아름다운 성. 반면 일본 관광객들은 로텐부르크로 몰려간다. 얼마나 로텐부르크를 찾는 관광객이 많은지, 대부분의 상점에서 일본어 안내문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후 세 시. 관광객들이 도심에 있는 마르크트 광장에 모인다. '포도주 마시는 인형'을 보기 위해서다.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매시 정각 시의원 회관 벽에 걸린 시계 좌우의 창이 열리고 인형들이 나타난다. 인형들은 30년 전쟁(1618~1648년) 때 도시를 점령한 틸리 장군과 느슈 시장의 일화를 재현한다. 30년 전쟁은 신ㆍ구교의 전쟁이다. 구교도인 틸리 장군은 도시를 불태우고 신교도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느슈 시장은 자비를 청했다. 그러자 틸리 장군은 기상천외한 제안을 한다. 포도주 한 통(3.25ℓ였다고 한다)을 단숨에 마시면 명령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은 포도주를 '원샷'했다. 술을 못했다고도 하고, 고령이었다고도 한다. 그는 도시와 시민을 살린 다음 3일 동안 인사불성이 됐다. 로텐부르크에서는 매년 6월 '마이스터트룽크'라는 축제를 열어 당시를 기념한다.
광장 한편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 와인 대신 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마이스터트룽크(Meistertrunk)는 '위대한 들이킴'이라는 뜻이다. 나는 '생명의 원샷'이라고 부르고 싶다. 틸리 장군은 로텐부르크를 살육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느슈 시장은 자비를 청하면서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다. 포도주에 입을 대는 순간, 아니 자신을 던지기로 작정한 순간 느슈는 곧 로텐부르크다. 그것이 지도자의 숙명이고 리더십의 본질이 아닐까.
마르크트 광장의 벽시계는 명성만큼 대단하지 않다. 인형들의 동작도 불분명해서 '그렇다 치고' 봐야 실망을 줄일 수 있다. 느슈 시장이 잔을 기울이다 말고 슬쩍 틸리 장군의 눈치를 보는 순간이나 시장을 흘겨보던 틸리 장군이 문득 "그만하면 됐다"는 듯 고개를 까딱하는 순간은 아마도 내 상상 또는 희망이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 찡함. 로텐부르크에서.
허진석 스포츠레저 부장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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