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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햄릿', 런던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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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석 규모 정명훈과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3주 전부터 매진

런던 피콕극장에서 올려진 극단 여행자의 '햄릿' 공연 모습.

런던 피콕극장에서 올려진 극단 여행자의 '햄릿'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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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오진희 기자]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뜨거운 박수갈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연을 마친 배우들과 연출가는 무대 배경의 붉은 아우라처럼 상기된 표정이었다. 7월 런던을 찾은 외국인과 현지인들에겐 서로 다른 언어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저 공연이라는 소통 언어로 하나돼 함께 즐기고 만끽하는 분위기였다. 바로 우리나라의 전통 굿으로 풀어낸 ‘햄릿’이다. 폭발적인 율동감과 비극을 희극적으로 만들어낸 해학은 ‘새로운 햄릿’을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훌륭하다(Terrific)”, “기발하다(Brilliant)”, “매우 좋았다(I loved it)” 런던의 문화계 인사들도 즉각 ‘별 다섯 개’도 모자란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햄릿의 ‘한’을 ‘굿’으로 풀어내다= 지난 12일 오후 7시 반(현지시간) 런던 서쪽 웨스트엔드에 위치한 피콕극장에서 극단 여행자의 ‘햄릿’이 처음 소개됐다. 2009년 서울 명동예술극장 초연 이후 이미 호주와 독일에서 수차례 공연된 ‘햄릿’은 3년 만에 해외 무대에 다시 올랐다. 웨스트엔드는 런던에서도 가장 번화한 상업 지구이자 런던극장협회에 속한 50여개 극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이 중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1000석 규모의 피콕극장에서 열린 ‘한국의 햄릿’은 공연 시작전부터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이 극장에선 앞서 스위스 마임극 ‘무멘산츠’, 우리나라 넌버벌 퍼포먼스 ‘점프’, 중국의 무술공연 ‘샤오린 몽크’ 등 국제적인 공연들이 자주 무대에 올려졌다.

햄릿이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햄릿이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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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햄릿 공연은 런던 내 ‘금융의 심장’으로 불리는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에서 해마다 열리는 축제의 올해 메인테마인 ‘서울’을 대표한 연극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에 한국의 굿을 도입해 복수와 음모로 가득한 인물들, 원작의 비극적 매력을 충실하게 담아 한(恨)과 살풀이로 창작한 무대다. 공연이 시작되자 북, 꽹과리, 장구 등의 악기 뿐 아니라 무녀의 노랫가락, 방울소리는 관객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변사의 대사에 따라 말없이 배우들은 과장된 연기를 선보이며 꼭두각시인형극을 펼치는 듯 했다. 무대 역시 인간의 운명을 위로하고 복을 비는 굿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마치 제단을 형상화한 것 같이 바닥의 가장 자리는 2t 규모의 쌀로 채웠고, 관객석을 마주한 무대 중앙과 양쪽으로 삼신할머니, 선녀신, 마마신, 장군신, 대감신 등 온갖 신들의 얼굴이 그려진 무신도(巫神圖)가 빼곡히 세워졌다.

루이즈 찬탈 옥스포드 플레이하우스 디렉터는 “이번 공연은 ‘햄릿’에 등장하는 가족과 죽음이라는 소재를 한국의 굿 그리고 제례의식을 결합해 매우 강력한 미장센을 만들어 냈다”며 “전통적인 ‘햄릿’이 내면과 목소리에 집중해 있었다면 이번 ‘햄릿’은 신체 동작이 훌륭하게 돋보이는 연극이었다. 이렇게 동적이고 화려한 공연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극찬했다. 폴 거진 시티오브런던 페스티벌 위원장 역시 “축제와 관련된 강연과 포럼으로 서울엔 여섯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에 관심도 많고 그동안 다양한 공연들을 봐 왔다”며 “1999년 영국 에딘버러 축제에서 접한 ‘난타’가 재미와 흥미를 돋우는 공연이었다면 양정웅의 ‘햄릿’은 작품성에서 최고로 꼽고 싶다”고 말했다.
피콕 극장

피콕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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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폴 성당서 정명훈과 LSO ‘합창’ 협연 = 오는 15일 저녁 8시(현지시간)엔 클래식 음악의 향연이 서울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정명훈과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의 협연으로 펼쳐진다. 클래식 연주는 시티오브런던 축제가 그동안 전통적으로 선보여온 프로그램이다. 소프라노 캐슬린 킴과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강요셉, 베이스 박종민 등 한국의 간판급 성악가들도 대거 참여한다. 세계 3대 성당 중 하나인 세인트 폴 대성당 크립트(Crypt, 과거 묘지로 쓰이던 교회 지하실)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연주될 예정이다. 특히 ‘합창’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냉전의 종식을 고하는 축하 콘서트에서 연주된 곡이기도 하다. 축제 주최 측은 북한 관현악단과 합동공연을 펼친 바 있는 정 감독에게 이 곡을 제안했고, 정 감독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더욱이 그의 스승인 이탈리아의 명지휘자 고(故)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30여년 전 이곳에서 같은 곡인 '합창'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번 연주회의 전체 1900석의 관람석은 이미 3주 전에 매진됐다.
세인트 폴 대성당

세인트 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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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오브런던 페스티벌은 ? = 영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이 축제는 지난 1962년 개최돼 올해로 52회째 열리고 있다.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시티오브런던’이란 지역은 금융가들이 모여 만든 주식회사가 정부 역할을 하는 기업형 도시국가다. 이곳에 자리한 세인트 폴 대성당, 길드홀, 맨션하우스 등 유수의 건축물 내부와 야외 공간 50곳에서 3주 넘게 축제가 진행된다. 지난해까지 클래식 공연들이 주가 됐지만 올해는 연극, 뮤지컬, 코미디, 무용 등 장르가 다양해졌다. 공연수도 250개로 작년보다 100개 늘었다. 메인테마를 '도시-서울'로 잡아 한국문화를 집중 소개하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삼성, 금호아시아나 등 공공기관과 기업들도 후원에 나섰다. 한국 공연단으론 극단 여행자의 ‘햄릿’에 앞서 앙상블 시나위의 퓨전 음악, 화가 마리킴의 미디어아트와 어우러진 이경옥무용단의 ‘안데르센의 시선들’, 비보이 공연, 김선욱의 피아노 리사이틀 등이 이어졌다. 정명훈 공연에 하루 앞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리사이틀도 예정돼 있다. 이번 축제는 지난달 22일 시작돼 오는 17일 막이 내린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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