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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소백산의 봄밤, 그때 그 별이 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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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화성, 북두칠성 등 천체망원경 속으로 들어와

▲줄무늬가 선명한 목성. 망원경으로 관찰이 가능했는데 카메라에 담는 것은 어려웠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찍은 목성.[사진제공=NASA]

▲줄무늬가 선명한 목성. 망원경으로 관찰이 가능했는데 카메라에 담는 것은 어려웠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찍은 목성.[사진제공=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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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천문대(충북 단양)=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기원전(BC) 2014년 3월28일, 고조선의 어느 마을의 들판. 태양은 지고 어스름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비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큰 바위 앞에 나란히 서 있다. 큰 바위는 며칠 전 '아비의 아버지'이자 '아들의 할아버지'를 묻은 무덤, 고인돌이었다.

아비는 몸짓과 손짓으로 아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아들은 그러나 슬픈 표정으로 고인돌을 마냥 바라만 볼 뿐 아비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비는 "보거라. 아들아! 이 바위에 하늘의 별을 새겨놓았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아니다. 이 고인돌에서 시작해 하늘의 별이 돼 지금 빛나고 있다"고 수차례 설명한다.
아들은 고인돌에 새겨져 있는 별을 보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며 눈물을 그치지 못한다. 늘 자신을 사랑하고 귀여워 해 주던 할아버지가 너무나 그리운 것이다. 여러 번 설명했는데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 짜증이 날 때쯤 아비는 아들에게 말한다.

"저기를 보거라."

맑은 남동쪽, 남서쪽 하늘에 별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들은 아비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내 아들은 환하게 웃었다. 아비가 가리키는 손가락 위치에 걸려있는 그 별은 할아버지가 언제나 자신을 이 들판에 데리고 와 보여줬던 바로 그 별이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아들은 할아버지가 저 별이 돼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61cm 천체망원경.[사진제공=소백산천문대]

▲61cm 천체망원경.[사진제공=소백산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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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이다! 화성이다! 북두칠성이다!"

2014년 3월28일 대한민국. 해발 1400m 연화봉 바로 아랫자락에 위치한 소백산국립천문대. 저녁 내내 구름으로 뒤덮여 있던 하늘이 밤 11시30분쯤 마침내 열렸다. 남서쪽 하늘에 목성이 나타난 것이다. 남동쪽으로 화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북두칠성도 흐릿했지만 자태를 보이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천체망원경으로 관찰한 목성과 화성은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천체망원경 속 목성은 태양에서 가장 큰 행성인 만큼 줄무늬까지 보였다. 망원경이 아니더라도 육안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태양계를 도는 같은 행성이기 때문에 주변의 별보다 훨씬 빛이 난다. 화성은 오렌지색을 뿜으며 주변의 별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줬다.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데 여건이 여의치 않아 마음속으로만 그 모습을 담았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목성과 화성, 북두칠성, 북극성 등은 기원 전 고조선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눈물짓다 아비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본 뒤 마침내 '할아버지 별'을 발견하곤 환하게 웃었던 그 아들의 모습과 시간을 초월해 연결돼 있다.

▲소백산 연화봉 정상(해방 약 1400m)에는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이 위치한다. 이를 중심으로 등산로의 거리에 따라 행성들의 이름을 딴 쉼터가 있다.

▲소백산 연화봉 정상(해방 약 1400m)에는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이 위치한다. 이를 중심으로 등산로의 거리에 따라 행성들의 이름을 딴 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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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소백산 연화봉 바로 밑에 자리를 잡은 소백산천문대가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문대는 인간의 삶과 거꾸로 산다. 해가 지면 반짝반짝 눈빛을 뿜으며 하늘을 향해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낸다. 해가 뜨면 천문대는 문을 닫고 조용한 낮을 맞는다.

주피터(Jupiter)인 목성.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이다. 가스로 이뤄져 있어 가장 밝은 행성이기 때문일까. 망원경 속으로 들어온 목성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태양으로부터 거리는 5.2AU로 약 7억8000만㎞이다. 태양에서 지구까지가 1억5000만㎞(1AU)이니 지구에서 목성까지는 약 6억3000만㎞에 해당된다.

충북 단양에 위치한 소백산천문대에는 1974년 국립으로 설립됐다. 현대천문학의 시작점이었다. 천문학에 대한 역사를 굳이 따지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발견된 고인돌에서 북극성 등 별자리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후 신라의 첨성대, 조선의 관상감 등 별자리 연구기관들이 있었다.

▲연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천문대.

▲연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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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소백산천문대가 생기면서 우리나라 현대천문학의 시작을 알렸다. 소백산천문대에는 61㎝짜리 천체 관측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1975년에 첫 관측을 시작했으니 약 40년 동안 소백산을 지켜온 셈이다. 우리나라는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구름이 끼거나 하늘이 맑지 않으면 관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65일 중 160~180일 정도 관측이 가능하다.

날씨도 맑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하늘이 깨끗해야 먼 곳까지 별들의 움직임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소백산은 철쭉으로도 유명하다. 아직 철이 일러 철쭉은 피지 않았지만 철쭉이 피고 봄바람이 불어올 때쯤 밤이 찾아오면 소백산천문대는 봄꽃과 별꽃으로 어우러진다.

성언창 소백산천문대장은 "천체망원경이 탄생했다는 의미는 만들어진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처음 별자리를 관측한 때를 말한다"며 "40년이 지난 61㎝ 망원경이 아직도 소백산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성과도 있었다. 2009년 두 개의 태영을 공전하는 행성을 소백산천문대에서 관측했다. 성 대장이 이끈 관측동의 2층에는 그동안 소백산천문대를 거쳐 간 많은 천문학자들의 관측일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82년에 작성된 관측일지에는 "망원경의 한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수리가 필요하다"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관측한 별자리의 변화에 대한 내용까지 다양했다.

지금은 모든 과정이 디지털화돼 있기 때문에 컴퓨터로 정리된다. 소백산천문대의 관측 자료를 토대로 1년에 5편의 논문이 탄생하고 있다. 별을 보고, 별을 연구하는 것은 천문학의 고유 영역이다. 이는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지금 지구에 서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연구하는 근원적 학문이다. 소백산에서 관측하고 있는 별이 인류가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주의 신비로움은 커져만 간다.
▲소백산 연화봉 정상.

▲소백산 연화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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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천문대(충북 단양)=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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