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 CEO서 '캘리그래퍼' 변신한 임정수씨
글씨 속에 '인문학'과 '감성'을 담는다는 그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임씨는 미술 학원은커녕 학창 시절 미술ㆍ서예 등 동아리에서 활동한 적도 없다. 대학에선 경영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8년 동안 상업부기를 가르쳤다. 진흥기업에 대리로 입사해 이사까지 올랐던 그는 광고회사 타이거코리아 부사장, 중견건설사 대창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고작 3개월 수업 받고 캘리그래퍼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미술 숙제를 해 갔더니 엄마가 해준 것 아니냐며 종아리를 심하게 맞은 적이 있어요." 군에 있을 땐 타자기병으로 입대했다가 차트병으로 발령나 군대 내 공지를 도맡아 썼다는 그는 "그러고 보면 캘리그래퍼의 싹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라며 웃었다.
임씨는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니 자신의 손글씨로 돈 벌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8년 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700점이 넘는 작품을 아무나 퍼 갈 수 있도록 공개한 것도 이런 상업적 욕심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인사동의 한 갤러리는 낙관 없이 임씨의 글씨체를 가져다가 입구에 큼지막하게 써놓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
임씨는 24~28일 국회의원 의원회관에서 전시회 '손글씨 담긴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명함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굵직한 글씨체를 선호하는 의원들, 보좌진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다. 전시회 사흘 만에 국회의원 90여명, 관람객 1500명이 다녀갔다. 이름을 써 주려고 준비한 엽서 3000장은 동이 나기 직전이다. 책과 엽서 팔기에는 영 관심이 없어 보이는 임씨에게 출판사 사장은 '작가는 한 시간 만 전시회에 있다 간다' '엽서를 팔아야지 거기에 이름을 써 주면 어떻게 하느냐' 등 잔소리를 늘어놨다.
그러나 임씨는 돈 안되는 글씨 써 주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 사람들이 제일 사진 많이 찍는 장소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버나드쇼 묘비명)' 글귀가 쓰인 액자 앞이예요. 매일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 글귀에 깊이 공감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국회란 공간이 엄숙하고 경직된 공간인데 이 전시회로 여기 사람들이 조금 따뜻해 졌으면 합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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