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대인관계가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 상황에서 독특한 수사는 인기를 높이는데 한 몫 하게 된다.
국회의원의 수사는 진정 화려하다. 국회에서 열리는 회의를 볼 때만 말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의원들의 수사는 맺고 끊음이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화법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공식발표 전까지 가부(可否)의 사이에서 연일 줄타기를 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려하고 있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서울은 서울만 생각할 게 아니라 경기ㆍ인천을 함께 보고 수도권 전체의 발전 계획도 생각해봐야 한다"(2월12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는 식의 발언으로 출마 가능성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유력 후보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 역시 외줄타기 화법을 보였다. 최근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책임감 있게 심사숙고하겠다"는 멘트를 남겼다.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맞는 말이지만 이 역시 두루뭉술한 표현이다.
정치인들의 방향성 가늠하기 힘든 화술은 행보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 말 신당 창당을 추진하면서 '색깔이 불분명한 정치인과 정당이 되고 있다'는 비아냥을 접해야만 했다.
정치인의 애매한 화법이 그렇다고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정치적 지형은 마치 생물처럼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5선의 중진인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단정짓지 않는 것은 정치인의 덕목"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최근 민주당이 공천 폐지를 놓고 다소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공천을 폐지하겠다고 단정적으로 약속한 게 후폭풍이 돼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수사에는 모든 가능성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문구를 듣는다면 가슴에 와 닿을지 모른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