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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두루뭉술' 화법은 정치인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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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화법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사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대중연설이나 법정에서 변론 효과를 높이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결과다. 궤변만 늘어놓는다는 비난을 받았던 소피스트들이 말하는 법과 설득하는 기술을 가르치면서 각광을 받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수사학은 언어의 발달은 물론이고 시민 계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사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대인관계가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 상황에서 독특한 수사는 인기를 높이는데 한 몫 하게 된다.
정치인에게는 더 없이 중요하다. 선거철 표(票)로 운명이 좌우되는 정치인에게 수사학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임에 틀림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던 정치철학자 최상룡 교수는 201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자원은 쉽게 말해 돈, 칼 그리고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돈과 칼은 시스템으로 해결되지만 말은 그렇지 않다. 정치가 바로 언어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수사는 진정 화려하다. 국회에서 열리는 회의를 볼 때만 말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의원들의 수사는 맺고 끊음이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화법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공식발표 전까지 가부(可否)의 사이에서 연일 줄타기를 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려하고 있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서울은 서울만 생각할 게 아니라 경기ㆍ인천을 함께 보고 수도권 전체의 발전 계획도 생각해봐야 한다"(2월12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는 식의 발언으로 출마 가능성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발표만 안했을 뿐, 시장 출마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는 오히려 후퇴를 택했다. "여부를 곧 발표하겠다"면서도 "서울시장직은 만만치 않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유력 후보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 역시 외줄타기 화법을 보였다. 최근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책임감 있게 심사숙고하겠다"는 멘트를 남겼다.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맞는 말이지만 이 역시 두루뭉술한 표현이다.

정치인들의 방향성 가늠하기 힘든 화술은 행보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 말 신당 창당을 추진하면서 '색깔이 불분명한 정치인과 정당이 되고 있다'는 비아냥을 접해야만 했다.

정치인의 애매한 화법이 그렇다고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정치적 지형은 마치 생물처럼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5선의 중진인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단정짓지 않는 것은 정치인의 덕목"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최근 민주당이 공천 폐지를 놓고 다소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공천을 폐지하겠다고 단정적으로 약속한 게 후폭풍이 돼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수사에는 모든 가능성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문구를 듣는다면 가슴에 와 닿을지 모른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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