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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서울성곽과 정도전, 그리고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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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조명이 오히려 너무 늦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 역사에 손꼽히는 천재이자 풍운아였던 것을 생각하면 소재 빈곤으로 허덕이는 드라마나 방송 제작진들이 왜 이제야 그에 대해 주목하게 됐을까, 의아함마저 든다.

역사상 그 예를 보기 드물 정도로 한 왕조를 치밀히 설계한 국가의 건설자였고 정치가로서 학자로서 많은 업적과 저술을 남긴 그였지만 아마도 그의 최고 작품 중의 하나는 한양일 것이다. 그는 한양의 궁궐뿐만 아니라 주요 도로와 건축물들의 이름을 직접 붙이면서 새로운 도읍에 정연한 질서와 의미를 부여했다. 한양은 그의 성리학적 이상과 애민정신을 펼쳐보인 공간적 집대성이었다.
그가 그린 한양 청사진의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가 그 자신이 부활하고 있는 것처럼 요즘 되살려지고 있다. 바로 서울성곽이다. 한양을 둘러싼 17㎞ 길이의 이 성곽은 식민지 시대와 개발을 거치면서 사라지고 묻히고 변형되었지만 이제 서울의 둘레길로 복원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 성곽길을 걸으며 서울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사람들이 이 성곽길에서 느끼는 매력, 그것은 무엇보다 한 도시의 역사, 오랫동안 퇴적된 기억의 숨결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 성곽길을 걸으면서 삶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는 것임을, 삶은 결코 일시에 창조될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과거를 파묻어야 할 것으로 여겼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나온 흔적은 허물고 묻어버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성곽은 무너지고 잘리고 깎여나갔다. 이제 서울성곽의 복원은 오래된 것의 발견 속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음을 보여준다. 과거를 밀어내지 않을 때 현재가 오히려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다만 서울성곽의 복원은 단지 '과거'의 복원이 아니어야 한다. 역사의 진정한 복원은 과거를 유적이 아닌 현재의 삶이 함께 이뤄지는 공간으로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서울성곽을 '유물'이 아닌 지금의 삶의 현장 속에 살릴 때 가능할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성곽길 복원이 그 같은 온전한 복원을 이뤄낼지 지켜볼 일이다. 서울이 산도 있고 강도 있어서 좋듯이, 대로와 골목이 함께 있어서 살아 있듯이, 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할 때 풍부해진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줄지 지켜볼 일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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