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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포럼]돈이나 숫자로 따질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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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다루는 신문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글도 어울리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이 역시 '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에 관한 강연과 책으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을 내놓았다. 정의(justice)란 말 자체는 벌써 수치적인 비교를 전제로 하고 있다. 숫자로 나타낸 크기가 똑같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價値ㆍvalue)라는 말 속에도 돈이나 수치로 따진다는 뜻이 이미 포함돼 있다. 가치 있는 대상을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 합리적인 사회를 이루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관습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가치를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숫자로 나타낸 것이 절대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숫자나 돈으로 나타내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 전반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면 오히려 더욱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에 비해 과학과 기술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축적하게 된 데에는 수치적인 표현이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수치적인 비교가 때로는 과학과 기술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을 때가 많다.

최근 한 노벨상 수상자가 이제부터 자신은 높은 수치로 평가되는 네이처 같은 학술지에 더 이상 논문을 게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흔히 학술논문의 가치척도로 인식되고 있는 피인용지수 같은 수치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스스로 그것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순수수학 분야 논문의 피인용지수를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형편없이 낮다. 피인용지수가 높다는 말은 그 분야가 완벽해지기 위해 아직도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순수수학 분야의 논문들 중에는 한 분야를 완결 지을 정도로 완벽해서 이제 더 이상 학술지에서 인용될 필요가 없게 되는 것도 있다. 그런 논문의 가치는 이제 확정된 것으로 교과서에서만 논의된다.

4년마다 동계올림픽, 축구 월드컵과 같은 해에 열리는 전 세계 수학인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수학자대회(ICM)가 올해는 우리나라 서울에서 열린다. 여기서는 아직 40세가 되지 않은 뛰어난 수학자에게 필즈 메달이 수여된다. 그런데 2006년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이변이 벌어졌다. 세기의 난제로 불리던 푸앵카레 추측을 해결한 공적으로 2006년 필즈 메달 수상자로 정해진 페렐만 박사가 수상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그 문제는 세계 7대 난제 중의 하나로 미국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내걸었던 상금 100만달러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돈이나 숫자로 평가돼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거부하고 더 깊은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집중하겠다고 관련 학계는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 공포한 셈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과학기술 분야 지원이 많은 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들의 연구를 돈과 숫자로 따지라는 끊임없는 요구와 연구비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연구자들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물론 연구에는 돈이 들고 이 비용을 제대로 따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순수기초과학에까지 그 연구의 효용가치를 돈과 숫자로 따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못해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사실 우리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돈이나 숫자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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