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먼지를 벗하던 책이 오래 기다린 끝에 갈피가 넘겨지며 숨을 쉬겠군요."
"감사합니다. 저희도 마침 필요로 하던 책을 마주하게 되어 어찌나 반갑던지요."
내가 넘기기로 한 책은 뿌리깊은 나무 민중자서전 스무권 전질(全帙)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창기라는 인물이 한국 출판문화의 기존 틀을 깨고 새로운 격을 세운 출판사이자 그곳에서 펴낸 월간지다. 한창기는 소리꾼, 가야금 명인, 고수, 설장구잡이, 춤꾼, 옹기장이, 목수 등 우리 문화의 명맥을 이어온 사람들과 이 땅 곳곳 토박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민중자서전으로 냈다.
또 약 10년이 지나, 나는 지난해 여름 도서관에서 '오래된 새 책'을 봤다.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 민중자서전을 구하는 사람이 많다고 읽었다. 한때 아끼던 책인데 낱권으로 흩어지게 하는 일은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빠진 책을 인터넷 헌책방에서 구했다. 내 손에 들어온 책이 내가 예전에 후배에게 선물한 바로 그 책일지도 모른다.
다시 갖춘 한 질을 지난해 8월 인터넷 헌책방에 올려놓았다. 인터넷 헌책방에서는 내 책을 사람들이 몇번 구경했는지 알려준다. 조회 회수가 뜸하게 늘면서 내 관심도 뜸해졌다. 앞의 연락을 받은 건 그러니까 반년 쯤 지나서였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을 남김으로써 인간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책으로 남아 불멸하게 된 예인과 장인, 토박이의 삶을 내 책장에 머물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민중자서전이 새로 깃을 들이게 된 그 연구소에서 생명을 되찾으리라고 기대했다. "책을 잘 받았고 상태도 좋더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 마음이 놓였고 홀가분해졌고 흐뭇해진 까닭이다.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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