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기업 눈치 … 10만건 중 매도의견은 달랑 4건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내용은 'SELL(매도)'인데도 투자의견은 'BUY(매수)'인 바보 같은 리포트들이 넘쳐나고 있다."
'매도'의견이 가물에 콩 나듯 하는 리포트 관행에 대해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5일 "삼성전자가 100만원이어도 BUY, 150만원이어도 BUY, 1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가도 BUY인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고 예를 든 뒤 "나도 애널리스트 말을 못 믿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애널리스트와 투자자, 기업 등 증권사 리포트를 생산ㆍ소비하는 주체 모두가 '매도' 의견을 원하지 않는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이런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매도의견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애널리스트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A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10여년 전만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기업들이 애널리스트에게 슈퍼갑(甲)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업탐방 자체를 거부 당하거나 '매도하라면서 왜 물어보세요?'라고 응수하게 되면 애널리스트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롱쇼트'(시장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사고 고평가된 주식을 매도해 구성하는 포트폴리오 운용전략)에 기반한 헤지펀드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에 많지 않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B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는 매도를 통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투자자들이 많지 않아 주가가 떨어지면 무조건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면서 "애널리스트 입장에선 투자자들이 불쾌해하는 일을 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증권업계 내부에서 못 믿을 애널리스트 리포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월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젠 마케팅이 애널리스트의 본질이라고 알고 있는 주니어들이 너무 많다"고 비판한 바 있다. 2012년에는 이혁재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리포트를 통해 "애널리스트가 부정적인 보고서를 내면 진위를 따져 투자 비중 조절의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당장 해당 애널리스트에게 전화해서 욕설과 협박을 일삼고 해당 기업은 탐방을 거절하는 것이 우리네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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