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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루비니, 이번에도 틀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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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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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내기를 벗어나 한창 일에 재미를 붙이던 시절, 어느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전해 들었다. '기자는 독자의 망각 위에서 기사를 쓰는 것이다.'

취재가 덜 됐거나 설익은 사안을 먼저 써서 결국 기사가 오보가 되더라도 남보다 앞서 가는 걸 주저하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더 폭넓게 해석하면 정확함에 얽매일 게 뭐 있느냐, 어차피 독자는 곧 잊어버리게 마련이니 틀리게 되는 기사를 작성해도 된다는 권유였다.
더 보고 듣고 읽으면서 기자뿐 아니라 경제전문가도 상당수가 사람들의 망각 위에 예측을 내놓음을 알게 됐다. 다들 쉽게 잊어버리고 누가 전에 어떻게 전망했는지 따져보지 않으니, 슬그머니 말을 바꾸는 경제전문가가 있다.

예컨대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세계 경제에 다시 '퍼펙트 스톰'이 닥친다고 경고했다. 경제가 회복되다가 주저앉는다는 더블 딥보다 훨씬 강한 타격을 받는다고 내다본 것이다.

세계경제가 다시 심각한 침체에 빠진다는 자신의 이 예상이 몇 년째 빗나가자 그는 방향을 살짝 틀었다. 지난해 5월 미국 주식시장이 앞으로 1~2년 더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을 꺼냈다. 그러더니 올해 들어서는 자신이 "갈수록 낙관론자가 되고 있다"며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아르헨티나 페소가 급락하고 터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경제국의 외환시장이 흔들리자 말을 또 바꿨다. "이는 작은 퍼펙트 스톰에 불과하고 더 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5월 이후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전망을 고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후 논평은 쉽다. 직접 뛰어들어 자신의 전망을 검증 대상으로 던지는 일은, 루비니 교수 같은 부류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모험이다. 나는 2012년 여름에 쓴 '대공황 우려는 기우다'(본지 7월10일자 데스크칼럼), '세계경제 버팀목, 그래도 미국'(본지 8월23일자 데스크칼럼)에서 제시한 전망의 틀을 유지한다.

퍼펙트 스톰, 혹은 대공황은 오지 않는다고 본 것은 다음 논리에서였다. 대공황은 경제적인 힘이 작용해 발생한 게 아니라 주요 국가가 거꾸로 가는 정책을 연쇄적으로 펴면서 악순환이 일어난 탓에 빚어진 사태였다. 그보다 강도가 약한 침체인 더블 딥이 일어날 가능성도 낮다고 예상한 것은 미국 경제가 금융 부문 전반에 스며들었던 부실을 걷어낸 만큼, 적어도 경제를 잡아 내릴 악재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미국 경제가 버팀목을 대면서 유럽과 중국 경제의 추가적인 위축과 둔화를 어느 정도 방어해줄 듯하다고 예상했다. 당시 내가 변수로 고려하지 못한 셰일가스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미국 경제는 내가 기대한 역할 이상을 하고 있다.

이제 나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맞물려 아르헨티나 외환시장의 혼란이 다른 신흥국으로 번지더라도 이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힘으로는 커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르헨티나와 신흥국의 고통은 심각하겠지만 세계경제 전체에 이들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신흥국 외환시장 동요가 심해지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28~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양적완화 추가 축소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예고된 위기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전파 경로가 보이는 불길은 길목마다 소방장치를 갖추고 방화벽을 점검함으로써 대비할 수 있다. 이 말은 경제 전망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경제전문가는 위험이든 가능성이든 경로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해당 경제가 위험을 피하거나 줄이고 가능성은 키울 수 있다. 결과를 적중시키는 것은 경제전문가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반면교사가 되는 경제전문가는 루비니에 국한되지 않는다.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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