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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만델라, 프란치스코, 그리고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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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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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우연은 필연 이상의 기연을 보여준다. 때로는 기연을 넘어 훗날 오묘한 섭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1883년에 나고 죽은 두 거인의 운명이 그런 경우인데, 칼 마르크스가 사망한 이해에 케인스가 태어났다. 자본주의를 부정한 이가 죽은 해에 자본주의에 새로운 갱생을 가져다 준 이가 탄생한 것이다. 자본주의(혹은 반자본주의) 역사의 인격적 화신들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생몰년도의 일치는 자본주의의 끈질긴 생명력을 매우 극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작년에 나고 죽었던 두 사람에게서도 이 같은 기연을 발견한다. 다름 아닌 넬슨 만델라의 죽음과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다. 한 사람은 생물학적 죽음, 다른 사람은 사회적 의미의 탄생이지만 두 사람의 생사의 교체는 마치 동일한 생명체의 소멸과 부활인 것처럼 비쳤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필자는 예수의 부활을 하나의 상징으로, 그러나 사실(史實) 이상의 강력한 의미를 지니는 상징으로서 받아들이는데, 두 사람의 말과 삶에서 나는 부활의 한 현현을 본다.
극한의 고난을 이겨낸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만델라. 그리고 그 이상으로 증오와 대립 대신 용서와 화해를 보여준 만델라를 잇듯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상의 고통에 대한 분노, 그리고 역시 그를 넘어서는 사랑과 자비로써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도 희소식을 안겨줬다. 사상 세 번째 추기경을 배출함으로써 한국의 천주교는 지금 축제 분위기다. 게다가 교황이 8월 중에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높다. 그의 방한은 반성과 회개의 종교인 천주교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반성과 회개는 무엇보다 기독교 그 자신에 대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건 한국 기독교(개신교이건 천주교이건)의 전례없는 급성장이 낳고 있는 짙은 그늘에 대한 기독교 자신의 인식과 반성이다. 김수영 시인은 '교회 미관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도시의 수많은 교회 십자가를 공장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는데, 이 말의 풍자적 의미를 제하고 본다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신자들의 양산이 이뤄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같은 급성장 속에서 우리 종교는 '종교 없는 종교'가 되고 있다. 국민의 50% 이상이 종교를 갖고 있지만 "한국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국가가 아니다"(오강남 교수)는 단언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 종교에 가해지는 질타는 특히 한국 종교의 반지성, 몰현실성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종교는 비이성, 몰합리를 신앙의 전제이며 출발이며 조건으로 여기는 듯하다. 특히 속세의 문제에 대한 동참과 발언을 반종교적 태도로 비판하는 데서 그 같은 탈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는 예수의 말을 생각한다면 그런 태도야말로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지금의 자본주의를 '야만적 자본주의'로, "규제가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한 교황을 스스로 꾸짖는 것이 아니겠는가.

베드로는 첫 닭이 울기 전에 자신은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자신의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참회의 눈물을 뿌림으로써 진정한 제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하는 훈풍, 그러나 세상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는 그 훈풍이 부디 한국의 교회에 좀 더 많이 불어왔으면 한다. 그럼으로써 베드로의 참회처럼 한국의 종교가 그 자신부터 뉘우치고 거듭나길. 그럼으로써 '큰(宗) 가르침(敎)'으로서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종교의 종교화'를 이룩하기를 바란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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