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란 게 기뻐도 한잔, 화나도 한잔, 슬퍼도 한잔, 즐거워도 한잔이다. 그런 점에서 술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증류해 만드는 것이다. 직장 생활에 지친 이들은 '월요일이니 한잔'으로 시작해 '금요일이니 한잔'으로 마무리한다. 그리 보면 술은 노동과 땀을 희석해 빚는지도 모른다. 술을 먹는 이유가 365가지도 넘어 1년 내내 술 마실 핑계가 즐비하다는 애주가들의 주장을 듣노라면, 인생과 삶을 발효하는 게 또한 술이기도 하다.
무당이 오구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 가운데 '바리공주'가 있는데 여기에도 술이 등장한다. 생전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질러 지옥으로 가는 이유 가운데 '술에 물을 타서 파는 짓'은 네 번째에 속한다. 악덕지주, 불효자, 강간범 다음으로 죄질이 무거운 것이다. 그만큼 우리 조상은 술을 귀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그런 각별함이 오늘날 '폭탄주' 문화를 꽃피워 미국으로, 유럽으로 수출하기에 이르렀다는, 역시나 학술적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을 다시 한번 들먹인다.
지난해 우리 국민이 마신 술(알코올)은 1인당 8.9ℓ에 달한다. 소주(20도)로 치면 123.6병, 500㎖ 캔맥주(5도)는 356캔. 이를 환산하면 우리는 '술에 취한 나라'와 '술에 취해가는 나라' 사이의 어디쯤에 놓여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위치 설정에 전날 또다시 (후배들과) 기여했음을 숙취의 얼얼한 기분으로 이실직고한다. 술을 마시되, 술에 먹히지 않은 것을 다행스러워하면서. <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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