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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이름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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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마지막 보헤미안'을 자처하는 정현우 시인이 키우는 개(犬) 별명은 '이풍진개새끼'다. '별'이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천덕꾸러기 별명은 개목줄처럼 녀석을 붙든다.

사연은 이렇다. 녀석은 시인에게 오기 전 여러 손을 탄 데다 풍산개와 진돗개의 튀기여서 천방지축에 사고뭉치에 고집불통에 안하무'견'이다. 주인의 부름도 '개무시'하기 일쑤다.
그런 녀석을 볼 때마다 시인은 열불이 터지지만 넘치는 자유 의지가 자신을 닮은 것도 같고, 전생의 한 시절 녀석과 신분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풍산개와 진돗개 튀기에서 착안해 '이풍진개새끼'라고 부르며 화를 삭였다. 그러자니 미운 정 고운 정 들어 어느새 '한 지붕 식구'로 받아들여졌다.

정유정 작가의 최근작 '28'에는 '스타'와 '쿠키'라는 썰매견이 등장한다. 방향을 찾는 데 타고난 소질을 가지고 있어 한 번 갔던 길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며칠씩 굶고도 힘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지구력이 강하다. 주인을 위해 제 목숨 주저 없이 바칠 충견들이다. 낯섦을 싫어하지만 밤하늘 별빛만큼 총명한 스타, 부산스럽지만 애교 많은 쿠키. 이들의 통통 튀는 캐릭터는 작가가 작명한 '스타'와 '쿠키'라는 이름을 통해 더욱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살아난다.

이름은 그런 것이다. 성격을 규정하고 성질을 짐작하게 하며 태도와 습관, 버릇을 암시한다. 때론 맛까지 전달한다. 두 음절만으로 '사과'는 상큼하고 '수박'은 시원하고 '석류'는 시큼하다. 그러므로 이름과 대상이 어긋나는 것은 부조리다. 만약 '스타'가 아니라 '이풍진개새끼'였다면? 또는 '수박'이 시큼하다면?
작명가들은 사주가 좋으면 이름은 다홍치마라고 한다. 좋은 이름은 좋은 인상을, 강한 이름은 강한 인상을, 부드러운 이름을 부드러운 인상을 전해준다는 이유에서다. 어쩌면 우리 삶은 이름대로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귀한 필명을 선물 받았다. 후소(後笑). 돌아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는, 함께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는,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을 가졌다는 뜻이다. 과연 나는 그런가? 남에게 은은한 미소를 남기는 그런 사람인가? 과분한 필명이지만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꼭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그리 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각오와 함께. 이름은 바로 그런 것이다.

<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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