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1년에 서너 차례쯤 될까) 본 장면이라 눈에 익다. 늘 그렇듯 주인공은 20대 초반의 어리바리한 젊은 군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참에게 한바탕 치도곤을 당하고 있다. 군화발로 서너 차례 걷어 채인 허벅지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내무반 밖은 바야흐로 봄날, 연둣빛 개나리 잎이 한 두 방울 내리는 비에 가볍게 떨리고 있다.
텅 빈 경멸의 눈빛으로 그저 쏘아볼 뿐이다. 허벅지 대신 가슴 쪽으로 서늘한 통증이 지나간다. 그들의 시선 너머 유리창은 그저 캄캄하다. 거기까지, 꿈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늘 그랬고 이번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말없는 시선이 나를 깨운 것이다. 원초적이고 근거 없는 모욕, 그 힘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고,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선이 나의 깊은 잠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것들을 보아온 눈이었다. 그 확고한 자신감이 공평하고 다정한 눈매를 만들고 있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일본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는, 기자출신 작가가 10년에 걸쳐 썼다는)에서 만난 한 남자의 독백인데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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