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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남자의 시선과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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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라 깨어보니 등 쪽이 땀으로 흥건하다. 머리맡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고, 멍한 머리는 '내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시작하려면 좀 더 자야해'라고 외치고 있건만, 발이 먼저 몸을 베란다로 끌고 간다. 찬 공기 맞으며 담배 한 대 태우고 나니, 이 새벽에 나를 흔들어 깨운 그 정체가 궁금하다. 꿈속의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잡힐 듯 생생한데 그 안에 공포나 두려움의 흔적은 없다.

여러 번(1년에 서너 차례쯤 될까) 본 장면이라 눈에 익다. 늘 그렇듯 주인공은 20대 초반의 어리바리한 젊은 군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참에게 한바탕 치도곤을 당하고 있다. 군화발로 서너 차례 걷어 채인 허벅지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내무반 밖은 바야흐로 봄날, 연둣빛 개나리 잎이 한 두 방울 내리는 비에 가볍게 떨리고 있다.
내 시선은 고참의 얼굴을 건너뛰어 유리창을 넘어 미세하게 흔들리는 개나리 잎에 고정돼 있다. 상대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상기돼 있지만 그 이유가 도대체 불분명하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오해가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거기서 화면이 바뀐다. 주인공은 같지만 이번의 상대는 하나가 아니다. 여러 명에게 빙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발로 차지도 않는다.

텅 빈 경멸의 눈빛으로 그저 쏘아볼 뿐이다. 허벅지 대신 가슴 쪽으로 서늘한 통증이 지나간다. 그들의 시선 너머 유리창은 그저 캄캄하다. 거기까지, 꿈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늘 그랬고 이번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말없는 시선이 나를 깨운 것이다. 원초적이고 근거 없는 모욕, 그 힘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고,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선이 나의 깊은 잠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것들을 보아온 눈이었다. 그 확고한 자신감이 공평하고 다정한 눈매를 만들고 있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일본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는, 기자출신 작가가 10년에 걸쳐 썼다는)에서 만난 한 남자의 독백인데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눈빛을 가진 사내가 되고 싶다고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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