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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선(禪)으로 달리기

최종수정 2020.02.12 11:55 기사입력 2013.11.27 11:09

행주좌와어묵동정(行走坐臥語默動靜)이 모두 선(禪)이라고 한다.

걷거나 달리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머물거나 항시 선(禪) 수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간혹 조우한 선(禪)은 달리는 도중에 찾아왔다. 신기하게도 동적인 달리기가 정적인 선(禪)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런 행운은 내게만 깃을 들이는 게 아님을 마라톤대회에서 가끔 '주선불이(走禪不二)'라는 문구가 찍힌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알게 됐다. 달리기와 선(禪)이 하나임을 서양에서는 '선(禪) 달리기(Zen Running)'라고 표현한다.

달리면서 경험하는 선(禪)을 '주선(走禪)'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미국에서는 뛰다가 주선(走禪)에 이르면 달리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도 좋아 오금이 저려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황홀함 속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 주선(走禪)에서 좌선(坐禪)으로 자세를 바꾸는 셈이다.

주선(走禪)에 이르면 한없이 편안해진다. 몸은 마치 잘 닦인 궤도를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간다. 숨이 평상시보다 고르게 되고 힘이 전혀 들지 않아, 물만 마시게 하면 끝없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음과 정신이 모든 속박에서 풀려나 맑고 고요해진다.
주선(走禪)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다르다. 러너스 하이는 격렬한 운동 후에 맛보는 도취감을 가리킨다. 러너스 하이는 생리학적으로는 힘든 훈련 뒤에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된 단계에서 느끼는 기분이다. (제리 린치ㆍ워런 스코트, '나를 향해 달린다') 주선(走禪)은 뇌과학적으로 전두엽이 활성화된 명상ㆍ몰입 상태다.

뇌의 앞쪽 부분인 전두엽은 동기 부여, 충동 억제, 기획 등을 담당한다. 전두엽은 우리가 외부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행동의 주인이 되도록 한다. 전두엽이 활성화되면 무아지경이라고 표현되는 상태에 빠져들지만 실은 자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게임중독을 포함한 모든 중독은 전두엽의 충동 조절기능 저하와 함께 진행된다. 전두엽을 평소에 활성화해서 강화해 두면 중독에 빠질 위험과 멀어진다.

나덕렬 성균관 의대 신경과 교수는 '앞쪽형 인간'에서 전두엽을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TV를 끄고 책을 읽기, 읽기보다는 쓰기, 창작활동 등을 꼽는다. 나는 선(禪)으로 달리기를 권한다.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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