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합의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한 첫해, 국회 기능은 마비됐다. 국회선진화법이 가져올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민생·경제 법안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는데도 정기국회 기간인 지난 석 달 간 단 1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지금의 정치 실종은 누구 책임인가.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생떼' 때문이라고, 민주당은 청와대와 여당의 '불통'과 '독선'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정치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대선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을 쟁점화 한 야당은 '대선 특검'과 '국가정보원 개혁 특위'를 요구하며 정치파업을 벌였고,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여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키자 다시 한번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했다.
대한민국 정치가 정치 실종 상태에 빠진 책임은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에게만 있지 않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민주당 어느 누구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이 다양한 이해관계에 대한 갈등 해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보다 많은 책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민주당은 전략 부재와 잘못된 아젠다 설정 등으로 국민으로부터 수권정당의 이미지를 점점 잃고 있다. 이는 민주당의 자가당착이자 딜레마다. 하지만 엄연히 말해서 이는 민주당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민주당이 계속 이런 식의 방식 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권을 잡는 일은 요원해질 것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도 건전한 야당의 존재가 국정 운용에 걸림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오히려 건전하고 강한 야당이 있을 때 국정은 원할하게 돌아갈 수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다. 나아가 정치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강경 투쟁 이면에는 민주당에 정치적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의 현실인식도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교관 출신 정무수석의 존재감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여야 간에 합의를 한다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강조했다. 준예산안 편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이 정국은 국회가 풀어야 한다. 그리고 꼬인 실타래를 푸는 첫 단추는 청와대와 여당이 제공해야 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새누리당이 4자회담 등을 통해 민주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면서 당장 급한 예산안 처리부터 해야 한다"며 "당장은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박 대통령이 직접 김 대표를 만나는 등 정치파트너로 인정하면서 대화를 해야 대치정국이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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