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펫들의 19금 뮤지컬 '애비뉴Q' VS 그린데이의 노래로 만든 '아메리칸 이디엇'

청년실업·빈부격차...뮤지컬, 우울한 현실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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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많은 뮤지컬들이 꿈과 희망, 사랑을 이야기한다. 역경과 고난, 좌절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끝내 정의는 승리하고, 사랑은 제자리를 찾는다. 여기에 웅장하고도 화려한 뮤지컬 넘버들은 관객들의 감동을 부추긴다. 이 같은 현실도피적인 2시간여의 여정이 끝나고 나면 관객들은 최면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여과없이 반영하는 뮤지컬이 있다면? 내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는 주인공들이 나온다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애비뉴Q'와 '아메리칸 이디엇'은 관객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품들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가 깨진지 오래인 21세기, 미국의 젊은 층들은 청년실업과 빈부격차, 인종차별에 시달린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나타난 좌절감과 분노, 무기력함의 징후는 뮤지컬에서도 나타난다. 또 이 작품들이 미국 브로드웨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도 공감대를 얻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현실이 팍팍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두 작품이지만 '애비뉴Q'와 '아메리칸 이디엇'은 현실을 비틀고, 저항하면서 그들만의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 "엿 같은 내 인생", "인터넷은 야동을 위한 것"..발칙한 퍼펫들의 '애비뉴Q'


'애비뉴Q'는 퍼펫(인형)들과 배우들이 함께 나와 연기하는 독특한 형식이다. 인기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의 등장 캐릭터들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인형들이 어른이 돼 세상에 나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퍼펫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치 않다. '프린스턴'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백수다. 유치원 보조교사인 모태솔로 '케이트 몬스터'는 종종 '몬스터 차별' 발언을 듣는다. '로드'는 게이임을 숨긴 채 살아가야 하고, '트레키 몬스터'는 웹서핑을 통해 하루 종일 인터넷 야동에만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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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있을법한 이 캐릭터들은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애비뉴Q'에서 아옹다옹하며 살아간다. 체면과 예의라곤 전혀 없는 이 퍼펫들이 쏟아내는 대사와 노래는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이다. "엿 같은 내 인생",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 "누구나 조금씩은 인종차별적" 등과 같은 가사는 관객들을 웃기면서도 뜨끔하게 만든다. 19금 코드의 막장 유머도 퍼펫들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와 거부감을 없앴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은 '미국식 88만원 세대'의 자화상과 다름없으며, 삶의 목표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 프린스턴의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애비뉴Q'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위키드'를 제치고 토니상 작품상을 수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첫 한국 공연에서는 다행히도 작품의 수위를 낮추지 않은데다, 한국 상황에 맞는 유머러스한 자막까지 보너스로 선보였다. '인생이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애비뉴Q'가 제격이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퍼펫들의 모습에 오히려 위로를 받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10월6일까지 샤롯데씨어터.


◆ 그린데이의 노래로 만든 록오페라, 세 젊은이들의 방황 그린 '아메리칸 이디엇'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의 주인공 조니, 터니, 윌이 사는 동네도 '애비뉴Q'와 다르지 않다. 도시 외곽에서 무기력하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이들은 어느 날 도시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출발 직전 윌은 여자친구의 임신 소식을 듣고 여행을 포기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시로 나간 조니와 터니는 도시에서도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한다. 조니는 마약과 여자에 빠져 환락에 탐닉하며 망가져간다. 갑작스럽게 군입대한 터니는 결국 중동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는다. 남아있던 윌 역시 약물과 술에 중독된 생활을 하긴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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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은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아!'라고 결의에 차 있던 세 젊은이는 어느 새 '아메리칸 이디엇'이 돼 있다. 9.11테러와 이라크전을 겪은 젊은이들이 더 이상 미디어의 조종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막상 이들은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도, 자신에 대한 고민도 치열하게 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팝 펑크 밴드 그린데이의 그래미 수상 앨범인 '아메리칸 이디엇'과 새 앨범 '21세기 브레이크다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노래가 담은 저항과 반전의 메시지가 작품 속에 매끄럽게 녹아들진 못했다.


그러니까 그린데이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아메리칸 이디엇'의 강점이자 단점이다. 원곡이 가지고 있는 폭발력과 강한 메시지는 그 자체로만 압도적인 힘이 있지만, 그린데이를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작품을 따라가기 벅찰 수도 있다. 서둘러 방황을 끝낸 이들의 결론 역시 현실에 쉽게 타협한 것으로 보여진다. 무대 위에 배치된 40개의 TV모니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영상과 이미지만큼은 인상적이다. 2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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