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한쿡에서도 중소기업은 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여깔을 담당하고 있스미다."


3일 오후 장충동 반얀트리호텔. 리처드 힐(48) 한국스탠다드차타드 은행장의 서툰 한국어 인사말이 장내에 퍼지자 취재진 사이에선 잠깐 침묵이 흘렀다.

"안뇽하세요?" 행사 현장에서 스스럼없이 한국어 인사를 건네는 힐 행장이지만, 금융의 역할처럼 다소 까다로운 개념을 한국어로 설명하리라 예상치는 못한 탓이다.


리차드 힐 SC행장 '한국 토종 다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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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중소기업 금융상품을 소개한 이날 힐 행장은 "세계적으로도 한국에서도 중소기업이 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금융기관이 적절한 지원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창조금융의 지향점을 간명하게 정리한 셈이다.


2008년 1월 한국에 온 힐 행장은 체류 6년만에 소문난 '지한파(知韓波)'가 됐다. 임기 내내 존재감없이 지내다 출국하는 다른 외국인 행장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면서 때론 '토종'보다 더 과감하게 일을 벌인다.


대표적인 작품이 금융권 최초의 정년연장 프로그램이다. SC는 최근 만 58세인 정년을 62세까지 늘리는 '정년 연장형 은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철저히 실적에 따라 연봉을 준다'는 조건을 걸고 지난해 노조가 제안한 정년 연장안을 받아들였다.


금융권이 노사협약을 통해 정한 정년은 일반 행원의 경우 58세, 임금피크제 적용시 60세. SC의 정년은 이 보다 2년이 길다. 힐 행장은 올해 금융권 임금협상에 사측 대표로도 참여한다. 외국인 행장이 교섭 대표로 나서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고금리 논란을 불러온 가산금리 문제는 힐 행장의 공격적인 영업 전략이 부른 결과다. 은행연합회가 매월 대출 가산금리 현황을 공시하면 어김없이 SC의 금리가 가장 비싸다. 농협이나 산업은행과 비교하면 두 배나 차이가 나고, 같은 외국계 은행과 비교해도 두드러지게 금리가 높다.


이건 국내 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일 때 저신용자 대출을 주력상품으로 키운 SC의 전략때문이다. SC의 주력 상품은 연 13%대의 고금리 무담보 무보증 세렉트론이다. 제1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들은 제2금융권보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은행은 금리 마진을 높일 수 있는 윈윈 상품이라고 SC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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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행장의 튀는 행보는 은행 밖에서도 눈에 띈다. 그는 지난 3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선임됐다. 푸른 눈의 외국인 부회장이 탄생한 건 80년 축구협회 사상 처음이다.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팀의 광팬이다. 한국에서도 종종 FC서울, 수원 삼성의 경기를 보러 축구장에 간다.


한국 토종이 다 된 힐 행장에게 조준희 기업은행장이 '구제일'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줘 훈훈한 뒷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성은 영문 힐(Hill·언덕)의 의미를 담은 언덕구(丘)에서, 이름은 SC의 전신 옛 제일은행의 행명에서 따온 아이디어 상품이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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