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DNA]"전통공예도 디자인 전쟁..옛 문양만 고집 말아야"
명인명품3. 오왕택 나전장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조개껍질인 자개 조각을 붙여 장식하는 나전(螺鈿) 공예는 우리나라, 중국, 베트남 3개국의 대표적인 전통예술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나전장들이 가장 솜씨가 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유럽 등 외국에서 먼저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오히려 전통공예품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에서 관심이 덜한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외국 관광객이 더 많이 구입한다. 주문생산도 마찬가지다 "
27일 오전 서울 수유동 공방에서 만난 오왕택 나전장(사진·58)의 얘기다. 오 씨의 작업실에는 얇게 썬 자개조각이 공방의 한 켠에 고이 모셔져 있다. 선반에는 그가 정성 들여 작업한 나전칠기 함과 그림들이 가득하다. 그의 작품들은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국공예전'에서도 선보였으며 후속전시로 서울역 인근 전시장인 문화역서울284에 비치돼 있다. 실톱으로 세밀하게 자개를 오려 벽골(가구의 나무 틀)에 붙여 칠을 하고 광택을 내 만들어지는 나전칠기 작품에는 나전장의 공력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여느 장인들처럼 오 씨도 나전을 배우고, 작품 활동을 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어려운 시간을 겪고 난 후 지금은 마음껏 나전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이라면 행복이다.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그는 전남 광주 서동의 한 공장에서 나전을 처음 접했다. 가난한 시절 중학교를 중퇴하고 돈벌이에 나선 그가 일자리를 얻어 들어간 공장에서는 가구와 소반 등 각종 생활물품들이 나전으로 장식되는 공정을 거쳐갔다. 하지만 오씨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나전이 아닌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새총이나 칼을 나무로 깍아 뚝딱 만들어낼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결국 지인의 소개로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칠기장인 고(故) 김태희 선생을 찾아 서울로 올라갔다. 선생의 문하에서 7년 동안 진정한 공예기술을 사사했다. 그리고 전승공예대전에서 입선해 나전장인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 일흔이 가까운 선생의 도안을 보조하며, 작품을 만들고 살았다. 그러나 생활이 쉽지 않았다. 한 달 수입이 20만원 수준에 불과한데다 결혼을 하고 첫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는 다시 나전공장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아예 공방을 차려 신라호텔 위탁 전통공예품 매장에 작품을 판매하기에 나선다. 하지만 이때 겪은 설움이 컸다. 매장 주인은 그의 작품을 일본에 전시하고 판매하면서 수익을 크게 얻었지만 정작 결제 때가 되면 오씨에게 돈을 줄 수 없다며 나 몰라라 했다. 이렇게 처음 연 공방의 작업은 9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만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던 1994년에는 나전장의 명함을 아예 버리게 된다. 당장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퀵서비스' 배달에 나섰다. 그 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시작되면서 나전칠기 산업은 급격히 축소돼갔고 그는 더욱 더 나전으로부터 멀어져갔다. 1년만 하겠다고 다짐한 퀵 배달은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6여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던 오씨를 나전장으로 재기할 수 있게 한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였다. 아내는 그의 재능을 썩히기가 몹시 아까웠다. 10여년 전 나전공장 관계자나 함께 일했던 장인들의 연락처를 뒤졌고 다시 남편이 나전공예에 전념할 수 있게 그들과 연결했다. 오씨는 두 번째 공방을 차리고, 지금 열심히 나전의 세계를 일구고 있다. 2010년 나전칠기 기능경기대회 장려상과 2010년, 2011년 연이어 원주시 옻칠공예대전에 입선하면서 나전장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전통공예라는 것이 한 나라의 생활에 뿌리를 바탕으로 두고 있는 문화인데 여전히 지원이 안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배우는 이들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떠나고 이어나가지 못해 아예 우리 공예가 소멸될까 두렵다"
오씨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우리 전통공예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장인들도 이제 옛날 문양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와 맞는 디자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지금 세계는 디자인 전쟁 중이다"고 말해 '현대적' 전통공예로 나아가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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