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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살짝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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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를 거둘 때 회비 납부기한을 알려 주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이미 90% 이상의 회원이 회비를 냈습니다"라고 말해 주는 편이 나을까요? 눈치채셨겠지만 이것은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넛지'라는 책 이후 대중적으로 알려졌습니다. 넛지란 은근히 뭔가를 권한다는 뜻인데, 가장 널리 인용되는 사례로 남자 변기에 그려진 곤충을 들 수 있습니다. 남자 변기에 곤충을 그려 넣은 뒤 청소에 드는 수고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이성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특정한 선택이 쉽게 이뤄지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해 주면 사람들은 그 의도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험 가입 시 어떤 특약을 추가 가입(opt-in)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기본으로 해 놓고 원하면 빼 주는 방식(opt-out)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선택률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이런 측면을 오래전부터 간파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가 보면 상인들이 할인판매 표지를 내걸고 "오늘 안 사면 손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사실 물건을 사지 않으면 이익도 손해도 아닙니다. 그리고 "싸게 사면 돈을 아낄 수 있으니 이익"이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상인들이 손해를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뇌가 손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기업들은 행동경제학에서 좀 더 나아가 이른바 신경경제학에도 관심을 보입니다. 마케팅 활동에 대한 뇌의 반응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과 같은 장비를 이용해 꼼꼼히 들여다보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기업에 비하면 공공 부문은 행동경제학의 활용에 있어 아직 뒤처져 있습니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의 힘은 공공 부문에서 더 크게 발휘될 수 있습니다. 특정한 고지 방법이 세금체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혹은 어떤 안내 방법이 흡연율을 더 낮출 수 있다면 그 공익적 가치는 매우 크겠지요. 그래서 몇몇 국가들은 행동경제학을 정책과 규제에 활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넛지'의 저자인 선스타인이 백악관에서 일한 바 있고 덴마크나 프랑스, 호주와 같은 나라에서도 행동경제학이 정책수립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영국은 2010년 총리실 산하에 행동통찰팀(BITㆍBehavioural Insight Team)을 만들고 닉 차터 워릭대 교수를 자문교수로 정부 활동에 행동경제학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다양한 정책방안을 현장에서 실험해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다양한 '넛지' 방안을 실험적으로 적용해 보고 그 효과를 비교한 것이지요. 최근 보고서가 여럿 나왔는데 재미있는 결과가 많습니다.

예컨대 벌금 납부자에게 가장 좋은 고지 방법은 개인화된 문자 메시지인데, 금액을 명기하지 않고 편지처럼 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답니다. 장기기증의 경우 별도의 장기기증 서약서를 쓰는 방법 대신 운전면허 신청서와 같은 다른 신청서에 장기기증 여부를 선택하도록 하면 매우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회비를 잘 거두려면 주변 사람들이 다 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랍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부가 규제와 정책에 행동경제학을 이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공익적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행동경제학이 사람들을 적당히 속여 넘기는 도구로 쓰이기 시작한다면 금방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비록 한 인간의 뇌는 완전하지 않지만 집단이성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니까요. 어떤 고위 공직자가 '인턴'을 굳이 '가이드'라고 지칭한 이유 정도는 순식간에 눈치챌 만큼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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