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의 경제 발전은 우리 스스로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나라 밖 여건도 괜찮아 가능했다. 1960~80년대 동서 냉전 시대에 한국은 미국의 보호 우산 아래 국방비 지출을 줄여 경제 개발에 투자하면서 고도성장을 이뤘다. 이른바 섬유ㆍ신발 등 경공업이 산업화 주역인 1차 '도약 단계'다.
2차 '성숙 단계'는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석유화학ㆍ철강ㆍ전기전자ㆍ자동차ㆍ조선ㆍ반도체 등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이뤄졌다. 시장 개방과 함께 적대 관계였던 중국ㆍ러시아와의 수교가 이뤄졌다. 특히 중국과의 수교는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와 교역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한국의 제1 투자국이자 최대 교역국이다.
이제 정보기술(IT)을 다른 산업에 접목하고 서비스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꾀해야 할 3차 '고도화 단계'인데 대외 여건이 사뭇 달라졌다. 특히 교역 비중이 높은 미국ㆍ중국ㆍ일본 등 3국의 변화가 위협적이다. 거대 소비시장으로 알았던 미국에서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다. 싼 인건비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기술을 습득한 중국이 선진국과 겨뤄 손색없는 물건을 만들어낸다. 20년 넘게 불황에 허덕대던 일본 경제가 엔저 드라이브로 꿈틀댄다.
스쳐가는 트렌드가 아닌 각국의 정치ㆍ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확고하게 자리 잡아가는 '새로운 경제질서(뉴 노멀ㆍnew-normal)'다. 버락 오바마 2기 정부, 시진핑 체제, 아베 신조 정권 등 재집권했거나 새로 등장한 미ㆍ중ㆍ일 3국의 2013년 체제가 한국을 에워싸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숨통을 죄는 형국이다.
오바마 정부는 제조업 부흥을 경제 분야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미국을 새 일자리와 제조업을 끌어들이는 자석'으로 만들겠다며 미국으로 유턴하는 리쇼어링(reshoring) 기업에 법인세 인하 등 혜택을 주자 제조기업들이 돌아오고 있다. 캐터필러는 일본에서, 포드는 멕시코에서, 인텔은 중국에서 일자리를 되돌려 왔다. 최근 나온 최첨단 구글 안경도 '메이드 인 USA'다.
아베 정권이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낸 엔저 공습에 따른 피해는 한국이 가장 직접적으로 크게 받고 있다. 도요타ㆍ소니 등 일본 간판기업들이 수출 증대와 실적 호전 잔치를 벌이는 반면 현대차ㆍ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은 수출 감소와 실적 악화로 신음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발길이 뜸하더니 급기야 일본의 최장 연휴인 골든위크(4월27일~5월6일) 특수도 사라졌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전자ㆍ자동차ㆍ조선 등 9개 산업을 '소수의 강한 기업'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쟁력이 약한 곳을 도태시켜 초대형 기업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하청공장 내지 시장 제공자가 아닌 한국의 경쟁자다. 한국과 중국의 10대 수출품목 중 반도체ㆍ선박ㆍ평판디스플레이 등 5개가 겹친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바이오 등 차세대 산업에선 한국을 추월했다.
한국에서도 18대 대선에 따른 2013년 체제가 출범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둘러싼 정치권 대립으로 지각 출범한 데다 각료 인사 잡음으로 새 정부 출범 초기 천금 같은 시간을 허송했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자며 경제부흥을 외치는데 대외 여건은 과거와 다르고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인다. 남북관계까지 경색되며 화해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이 대립의 상징으로 변했다. 사면초가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로 위기를 돌파하겠다지만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각론에서 삐걱댄다. 미ㆍ중ㆍ일 3국의 뉴 노멀을 압도할 '한국식 뉴 노멀'을 찾아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의 위기 돌파 리더십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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