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스토리]MB맨 강고집, 산은그룹 떠나던 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강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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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진한 아쉬움과 회한이 묻어났다. 날이 서지는 않았지만 할 말은 다 했다. 끝까지 '강고집' 다웠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그룹 회장의 '떠나는 말'에 대한 얘기다.


강만수 전 회장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이임식을 갖고, 40여년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직접 작성한 이임사를 손에 들고 "사람은 '들고 남'을 분명히 해야한다. 올 때도 거절하다 왔고, 갈 때도 붙잡히다 늦었다"고 밝혔다. 그가 적어도 '나갈 때'를 분명히 한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면서 "버티기도 아니고 사천왕도 아닌데 듣기 싫었다"고 말했다.그의 거취를 두고 오르내린 세간의 입방아에 대한 돌직구다.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을 인용, "국민이 좋아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정부를 싫어하게 만들고 국민이 잘못된 대로 따라가면 정부를 망하게 만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시조시인이기도 한 강 전 회장이 시(詩)처럼 써내려간 이임사의 제목은 '이제 떠납니다'였다. 마지막에 적힌 날짜는 3월25일. 적어도 열흘 이상을 품고 다녔다는 얘기다. 이임 발표가 있은 30분 후 정부는 산은금융그룹 새 회장에 홍기택교수가 내정됐다고 발표했다. 관련기사 6면

그는 화려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던 공직 생활을 보냈다. 출발은 엘리트 코스의 정석이었다. 경남 합천 출신인 그는 경남고를 수석 졸업한 뒤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69년 서울대 졸업 후에는 행정고시(8회) 재정직에 수석 합격했다. 세무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지만 곧 재무부로 옮겼고, 세제국 사무관으로 일하며 1977년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성과를 냈다. 1985년에는 미국 뉴욕으로 넘어가 1988년까지 주미국 한국대사관 재무관으로 일했다.


이후 1993년까지 재무부 보험국장ㆍ국제금융국장 등을 거쳤으며, 1994년부터는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의 세제실장으로 근무했다. 1995년 제14대 관세청장, 1996년 통상산업부 차관, 1997년 재정경제원 차관 자리를 꿰찼다. 실력과 풍부한 아이디어, 거기에 강한 추진력과 때론 상관한테도 맞서는 소신 등 관료로 출세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춘 그였다.


그러나 1998년 3월 재경원 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10년 가까이 이렇다 할 자리에 오르지 못한 채 야인으로 지냈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은 그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08년 'MB정부'의 첫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이 때부터 그는 'MB맨'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그로서는 좀 아쉬운 대목이다. 실력으로만 따져도 되고도 남을 자리에 'MB'를 등에 업고 오른 것처럼 인식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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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지주 회장으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의욕과 창의'로 요약된다. 회사 노조에서도 그의 사임을 만류했을 정도로 내부평가가 좋았다. 골프여제 박세리, 청각장애 테니스선수 이덕희,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 나윤선 등을 후원하는 등 문화 지원사업에서도 새 지평을 열었다. 그는 언젠가 "은행과 미술이 무슨상관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작업들이 한국 경제발전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그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 전 회장이 어떤 형식으로든 복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1945년생인 그는 올해로 69세다. 이임사에서도 그는 말했다. "떠나는 날까지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이제는 울타리 밖에서 그가 심은 사과나무를 여유롭게 바라볼 때다.


김현정 기자 alph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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