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달라지는 동계스포츠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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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효과’로 서울 목동아이스링크가 지난 주말 ‘만원사례(滿員謝禮)’ 간판을 내걸었다고 한다. 불과 2, 3년 전 만해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내다본 빙상 관계자는 없을 터이다.

글쓴이는 1960, 70년대 국내 유일의 동계 스포츠 실내 시설이었던 동대문아이스링크와 관련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73년 봄 어느 날 친구들과 그곳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져 바지가 흠뻑 젖었는데 마침 그날 저녁 여자 친구와 데이트 약속이 있었다. 데이트 하는 내내 젖어 있는 엉덩이 쪽을 가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선수 수준은 아니었지만 고교 시절 운동장에 물을 가둬 놓고 얼린 임시 링크에서 치른 스케이팅 시험에서 90점을 받았으니 얼음판에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는 아니었다.

1964년 동대문 밖 창신동 사거리에 문을 연 동대문아이스링크는 이제는 어디에 있었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 무렵 동대문아이스링크에서는 글쓴이와 같은 스케이트 동호인과 아이스하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시간을 나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얼음판을 누볐다. 전진과 후진은 물론 급회전을 수시로 하는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빙판을 누더기로 만들어 놓았다.


원로 체육인들은 김연아의 선배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훈련해 기술이 크게 늘 수 없었다고 증언한다. 이곳저곳에 파인 얼음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단 것이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 때 있었던 일이다. 2월 3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이 대회에 한국은 임원 2명, 선수 5명(스피드스케이팅 4, 피겨스케이팅 1)의 소규모 선수단을 파견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 출전한 장명수는 유럽과 북미 나라 일색인 14개국 19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꼴찌를 했다. 개최국 일본의 야마시타 가즈미는 10위에 그쳤다. 실내 링크는 달랑 하나 뿐이고 정빙차(얼음판을 고르는 기구)도 도입되기 전이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 무렵 한국에 온 윌리스(여)라는 피겨스케이팅 국제 심판이 특별한 코멘트를 했다.


윌리스는 “한국인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소질 그리고 표현력의 장점을 살리고 외국의 기술 과 훈련 방법을 도입한다면 상위권 진입이 가능하다”고 전망하면서 “국제 경기, 특히 세계선수권대회에 해마다 출전해 한국에서도 스케이팅 열기가 크다는 것을 알리는 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선행 조건”이라고 조언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을 따기 38년 전 일이다.

인기 종목은 아니었지만 1960, 70년대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실력을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현주, 이인숙, 장명수, 홍혜경, 김영희, 김혜경 등 우수 선수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나름대로 라이벌전을 펼치기도 했다. 장명수는 삿포로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에 피겨스케이팅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동계 스포츠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던 동대문아이스링크는 1979년 석유 파동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해 전기 요금이 3차례나 오르면서 인조 얼음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연간 1억3천만 원에 이르고 1980년 9천500여만 원의 적자가 예상됐다. 그래서 빙상 관계자들은 일반 영업용 전력 요금이 아닌 산업용 전력 요금을 적용해 달라고 문교부와 동력자원부 등에 호소하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에도 휴업과 개장을 반복할 정도로 국내 유일의 실내 아이스 링크 운영은 힘들기만 했다. 이런 가운데 동대문아이스링크는 이미 사라질 운명이었다. 1976년 3월 서울시 도시 정비 계획에 따르면 도심지 반경 5km 이내에 있는 암모니아 가스 탱크 제빙 시설을 철거하기로 돼 있었다.

목동아이스링크가 만원사례의 기쁨을 누린 가운데 오는 16일 태릉선수촌 국제스케이트장이 4개월여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개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낮은 실내 기온 등을 해결하는 데 99억 원의 공사비가 들었다고 한다. 어림잡아 100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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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는 실내 링크를 유지하는 데 연간 적자 1억 원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맸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저절로 든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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