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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손승락 "제 고충, 승환이만 알 거예요"(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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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손승락 "제 고충, 승환이만 알 거예요"(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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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넥센에게 2012년은 아쉬움의 해다. 간절히 바랐던 가을야구가 물 건너갔다. 최종 성적은 6위(61승3무69패). 4위 롯데에 5.5경기를 뒤졌다. 숙원은 물거품이 됐지만 선수단은 개인 기록에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냈다. 타격 3관왕(홈런·타점·장타율)을 차지한 박병호는 올 시즌 최우수선수(MVP)로 거듭났고 신고 출신 서건창은 신인왕을 차지했다. 에이스 브랜든 나이트와 간판 강정호도 각각 평균자책점 타이틀과 20홈런-20도루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타이틀을 챙기진 못했지만 마무리 손승락 역시 주목할 만했다. 53경기에서 남긴 성적은 3승 2패 33세이브 평균자책점 2.15. 자신의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우며 넥센의 뒷문을 봉쇄했다.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손승락의 12월은 유독 추웠다. 다른 선수들이 한 달여 동안 화려한 조명을 받았을 때 홀로 목동구장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했다. 그는 상을 받을 여지가 없었다. 지난 시즌 구원 타이틀 경쟁이 여느 때보다 치열했기 때문. 손승락의 순위는 오승환(삼성, 37개), 스캇 프록터(35개), 김사율(롯데, 34개)에 이어 4위였다. 기량 저하 탓은 아니었다. 팀 성적이 8월 이후 내리막을 걸으면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수치를 올릴 기회가 줄었다. 넥센 구단은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27일 가진 2013시즌 연봉 협상에서 8천만 원을 올려줬다. 44.4% 인상된 금액은 2억6천만 원이다.
프로 입단 이후 연봉은 한 차례도 깎인 적이 없다. 그는 넥센 창단 이래 최고 인상률(2011년 271.8%)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많은 돈을 챙길 자격은 충분했다. 이전까지 선발투수로 뛴 손승락은 경찰청에서 돌아온 직후 갑작스레 마무리 제안을 받았다. 황두성의 컨디션 난조로 생긴 공백을 메워야 했다. 주위의 우려가 믿음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해 2승 3패 26세이브를 기록하며 구원 타이틀을 차지했다. 최근 3년 동안 손승락(76개)보다 많은 세이브를 올린 건 ‘돌부처’ 오승환(88개)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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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발자취에도 손승락은 만족하는 법이 없다. 최근 더 큰 목표를 세웠다. 승선이 확정된 WBC 대표팀에서의 선전과 넥센의 가을야구 진출이다. 그가 개인 타이틀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승락과의 장시간 대화를 통해 그의 진심(眞心)을 들어봤다.

다음은 손승락과의 일문일답
늦었지만 WBC 대표팀 승선을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받게 되는 태극마크입니다. 잘 던지고 돌아오겠습니다.

대표팀과 인연이 꽤 깊은 것 같네요.

영남대 시절 많이 선발됐죠. 경찰청 때도 몇 차례 다녀왔고. 하지만 WBC처럼 큰 대회에 출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내심 선발되길 바랐던 것 같아요.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책임감도 느끼고 있고요. 나라를 위해 뛰어야 하잖아요. 최상의 컨디션으로 대회를 치를 계획입니다.

그간 아마추어 국제대회에만 나갔던 게 많이 아쉬웠나 봐요.

아니라면 거짓말이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제외됐던 것이 가장 아쉬워요. 다들 열심히 해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왔잖아요. 저 역시 열심히 했습니다. TV로 경기를 시청하며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응원했어요(웃음).

야구월드컵, 대륙간컵 등 국제대회 성적이 꽤 좋던데요.

주로 선발투수로 나섰는데 부진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2009년 9월 유럽에서 열렸던 야구 월드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개최국 가운데 하나였던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8이닝 1실점)를 따냈죠. 그런데 대표팀은 예선 2라운드(16강)에서 조 5위(3승4패)에 머물러 8강 진출에 실패했어요. (고개를 숙이며)이번엔 선수단과 개인 성적 두 가지를 모두를 노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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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적이 한 번도 없었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오)승환이(삼성), (정)근우(SK) 등과 나갔던 2004년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패해 3위에 머물렀죠. 생각해보면 그 때가 가장 아쉽네요. 당시 대만과의 8강전에 선발 등판했는데 경기 전날까지 출전 통보를 받지 못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담 없이 잠을 청하라는 권영호 투수코치의 배려였어요. 그 덕에 마운드에서 5이닝을 무실점을 기록했죠. 팀도 (김)대우(롯데)의 홈런으로 1-0 승리를 거뒀고요.

WBC에서 꼭 맞붙고 싶은 타자가 있나요.

어렸을 때 포지션이 유격수였어요. 스즈키 이치로(뉴욕 양키스)를 떠올리며 타격을 연습했죠. 그 선수처럼 잘 치고 도루도 많이 하고 싶었어요. 맞대결까진 아니더라도 직접 플레이를 관찰하고 싶었는데 불참을 선언해 많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는 꼭 상대하고 싶어요. 결과를 떠나 그런 기회를 가진다는 게 영광일 것 같습니다. 물론 이왕 부딪히는 거 삼진으로 돌려세운다면 더 좋겠죠(웃음).

해외야구를 꽤 즐겨봤나 봐요.

제 나이 또래 선수들은 아마 다 그렇지 않을까요. 박찬호 선배의 메이저리그 경기가 있는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TV를 시청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에 돌아오실 줄 알았다면 타자를 계속 했어야 하는 건데. 타석에서 박찬호 선배의 공을 상대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쉽습니다.

투수로 전향한 이유가 뭔가요.

어렸을 때 지도자들이 공을 예쁘게 던지는 내야수라고 했어요. 어깨가 그만큼 좋았단 소리였죠. 많은 분들의 권유로 자연스레 마운드에 올랐던 것 같아요. 처음엔 언더핸드였는데 경기를 치르면서 오버로 바꿨어요. 아마 저 같은 케이스가 꽤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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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투수로 WBC 국가대표까지 됐군요.

얼마나 던질 기회가 돌아올 진 모르겠어요. 컨디션만 좋다면 이기는 경기에 많이 나가지 않을까요? 그래서 나름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축하전화를 많이 받았겠어요.

그런 건 없었어요. 팀 동료들한테 이야기를 들은 게 전부였습니다(웃음). 솔직히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요. 책임감을 가져야 하니까요. 몸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군요.

이번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부정적이잖아요. 야구 관계자나 팬 모두 타선에 비해 마운드가 약하다고 입을 모으니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함께 승선하는 투수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몸을 만들고 있을 겁니다.

대표팀 합류로 체력 관리에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원래 몸을 일찍 끌어올리는 편이거든요. 시즌이 끝나도 근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훈련을 많이 하는 편이예요. 지난해엔 마무리훈련을 다녀오기도 했죠. 당시 선수단의 최연장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훈련의 성격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필요하다고 여기면 가는 거죠. 그게 프로의 기본자세입니다.

사실 그걸 망각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잖아요.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팀에 해를 끼치면 안 되죠. WBC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팀, 더 넓게는 나라의 위상에 금이 가게 해선 안 됩니다. 오랜만에 달게 되는 태극마크라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앞으로 준비 과정이 다소 힘들겠지만 프로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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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을 돌이켜볼까요. 53경기에서 3승 2패 33세이브 평균자책점 2.15를 기록했습니다.

성적을 떠나 제 볼에 만족하지 못한 시즌이었습니다.

1년여 전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요.

만족스런 시즌이 한 차례도 없었던 것 같아요. 늘 뭔가 부족했어요. 좋아질 것 같으면 거기서 멈추더라고요.

시즌 초였던 4월의 투구내용은 꽤 훌륭했더군요. 7경기에서 1승 4세이브 평균자책점 1.08을 남겼습니다.

볼 끝이 이전과 달랐어요. 그래서 ‘이번엔 뭔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5월부터 페이스가 뚝 떨어졌어요. 시즌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감각을 회복했죠. 힘든 과정을 겪었으니 내년 시즌은 다를 겁니다.

만족스런 볼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나요.

네. 내년이 아니더라도 야구를 그만두기 전까지 한 번쯤은 머릿속에 그려놓은 시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아직 이 성적으론 만족할 수 없으니까요.

사실 출발이 좋지 않았습니다. 4월 8일 두산전에서 0.1이닝 동안 2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어요. 선수단도 11-13으로 졌고요.

아마 처음부터 어려운 상황에 등판했을 거예요.

10-11로 뒤진 8회말 1사 2, 3루였습니다. 최준석에게 좌중간 3루타를 맞아 역전을 허용했고요.

상대를 외야 플라이로 잡아도 블론세이브가 되는 상황이라 마운드에서 부담이 많이 됐어요. 출발부터 난조를 보여 경기 뒤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맞은 시즌이었거든요. 마음을 다잡는데 적잖게 애를 먹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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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7경기에선 한 점도 내주지 않았어요.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던졌는데 투구가 잘 되기 시작했어요. 그 사이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나요.

한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 너무 많았어요. 평소보다 힘을 많이 주고 던졌던 것 같아요. 제 불찰입니다(웃음). 밸런스 유지를 간과하고 욕심을 부렸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투구 동작이 이전보다 조금 커진 것 같아요. 워낙 역동적이라 멋있게 보이긴 하다만.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없었던 동작이 나오더라고요. 정작 힘을 줘야 할 땐 주지 못했고요. 마운드에서 많이 조급했던 것 같습니다. 내년 시즌을 앞두고 개선해야 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역동적인 투구 폼 때문인지 마운드에서 땀을 많이 흘린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원래 등판을 앞두고 땀을 많이 내는 편입니다. 그래야 몸도 잘 풀리고 부상도 방지할 수 있거든요.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후부터 그렇게 해왔습니다. 이제는 습관이 됐고요.

불펜에서 던지는 걸 포함하면 매일 상당량의 공을 소화하는 셈이군요.

그렇죠.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몸도 망가지지만 정신적으로 쉽게 피폐해지거든요. 이런 말을 하면 웃으실 수 있겠지만 마무리는 정말 강한 사람만이 소화할 수 있는 보직입니다. 프로야구에서 몇 년간 뒷문을 꾸준히 책임지는 투수가 승환이밖에 없잖아요. 다 이유가 있는 거라 봅니다.

그 힘든 마무리를 왜 맡은 거예요.

김시진 전임감독님께서 제 성격과 마무리가 맞아떨어진다고 보신 것 같아요. 견제나 수비 능력도 함께 고려가 됐을 테고요. 사실 자세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듣지 못했습니다(웃음).

특유 화끈한 성격이 한 몫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운드에서 상대를 피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부딪히니까요. 선발투수를 하려면 긴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 꾀를 부릴 줄 알아야 합니다. 마무리는 다릅니다. 저나 승환이처럼 힘으로 밀어붙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특유 무기를 갖춰야겠지요. 하지만 마무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의 빠른 마인컨트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없으면 절대 마무리를 해낼 수 없습니다.

오승환

오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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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과 성격이 판이한데요.

제가 거칠고 남자답다면 승환이는 조용하고 소녀 같죠. 하지만 승환이도 내면은 남자입니다. 평소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죠(웃음). 보이는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 건 그 때문일 겁니다.

집중력이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더그아웃에서 웃고 떠들다가도 마운드에만 오르면 180도 달라지더군요.

후배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비결이 무엇이냐고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경기에만 투입되면 자연스레 집중을 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야구가 체질인 것 아닐까요?(웃음)

놀라운 집중력은 마무리로서 큰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무리 상황에 등판하면 집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 하나로 인해 선수단이 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마운드에서 그런 생각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막는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강해질 수 있습니다.

마운드에서 스스로 긴장을 불어넣는 편인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포수 미트에 집중하면 자연스레 경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인위적으로 만드는 긴장은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마무리를 맡으면서 따로 준비하는 게 있나요.

다양한 측면으로 공부를 합니다. (잠시 고민한 뒤)사실 처음 공개하는 건데 저 자신에 대해 연구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정신력을 높이기 위해 매일 메모를 합니다. 최근에는 일기를 적고요. 필기를 통해 제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데 거기서 많은 답을 얻고 있습니다. 졸리고 피곤해도 거의 거르는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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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메모를 시작했나요.

팔꿈치 수술을 한 2006년 겨울부터입니다. 저 자신에게 ‘그 때는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왜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한 거야’ 등의 질문을 계속 던졌습니다. 정답을 찾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정신력이 한층 강해지더군요. 수술 후유증도 쉽게 극복할 수 있었고요. 경찰청에 입대한 뒤로 단 하루도 헛되이 보낸 적이 없었다고 자부합니다. 경기를 뛰지 않아도 제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무척 보람됐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청 입대가 본인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여러 차례 밝혔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2년여 동안 김용철, 유승안 감독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특히 김용철 감독님은 팔꿈치수술을 받은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제게 재활의 기회를 제공해주셨어요. 공을 적게 던지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그렇게 1년여를 보내고 만난 유승안 감독님은 실전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많은 등판 기회를 제공해주신 덕에 넥센에 복귀해 좋은 성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청을 택했던 이유가 궁금하네요. 당시 2군 리그에서 막강 전력을 자랑한 건 상무였는데요.

그렇죠. 그래서 경찰청을 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상무의 수준급 타자들과 맞붙으려면 다른 팀 소속이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민중의 지팡이가 되기로 한 겁니다(웃음).

입대 당시 김시진 전임감독의 만류가 심했다고 들었는데요.

2006년 겨울 팔꿈치수술을 받고 이듬해 컨디션을 어느 정도 끌어올렸습니다. 볼이 좋아지니 김시진 감독님은 팀에 남아달라고 했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실전에 투입되면 몸이 다시 망가질 것 같았거든요. 며칠 지나 김시진 감독님을 찾아가 진지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꼭 팀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그래서 겨우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 유니콘스는 해체됐습니다.

동료들이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사실 잘 모릅니다. 그 무렵 한창 방패술을 배우고 있었거든요. 훈련이 생각보다 엄청 힘들습니다. 경찰대학에서 2주를 보내고 바로 기동대로 넘어갔는데 평소 야구공을 잡았던 만큼 곤봉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 밖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죠. 더구나 저희 소대는 다른 소대와 달리 훈련을 8주 동안 했습니다. 조교들이 챙겨주는 통조림이 유일한 낙이었죠(웃음). 그래도 (신)용운이(삼성), (조)영훈이(NC), (양)의지(두산) 등과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버틸 만은 했습니다.

손승락(현대 유니콘스 제공)

손승락(현대 유니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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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해체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겠어요.

훈련을 마치자마자 소식을 접했는데 무척 당황스러웠어요. 입대 전 해체설을 듣긴 했지만 현실이 될 줄은 몰랐거든요. 지금은 넥센 2군 매니저로 일하는 (노)병오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복무를 마친 뒤에도 놀랐을 것 같습니다. 보직이 선발에서 돌연 마무리로 바뀌었습니다.

10승 투수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간 스프링캠프에서 제가 마무리를 맡을 수 있단 기사를 접했는데 정작 김시진 감독님이나 정민태 투수코치님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불펜 피칭이 잠시 동안 어중간해졌습니다. 50개를 소화할 때도 있었고 100개를 할 때도 있었죠.

직접적으로 이야길 전달받은 건 언제였나요.

스프링캠프가 거의 끝날 때였습니다. 정민태 코치님이 (황)두성이 형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하셨죠. 사실 처음엔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10승 투수를 꿈꿨었기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신인 때부터 선발투수로만 뛰어 그쪽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무리가 처음은 아니던데요.

영남대나 경찰청에서 뒷문을 막은 적이 몇 차례 있었어요. 그래서 변신에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1이닝 동안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겠지’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첫 해(2010시즌) 성적이 꽤 좋았습니다. 53경기에서 2승 3패 26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2.56을 기록하며 구원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던지는 놈이 가장 무섭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잘 됐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비결은 없었습니다.

당시 타 구단 마무리들과 투구 내용이 조금 달랐습니다. 가장 많은 63.1이닝을 소화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의 등판도 상대적으로 많았고요.

한 경기에서 3.2이닝을 던진 적도 있었습니다. 선발투수를 하지 않았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겁니다. 팀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보니 그냥 참고 버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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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넥센은 구원 타이틀을 노리기에 열악한 환경입니다. 허리가 다른 팀에 비해 불안하고 선수층도 두텁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마무리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되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돌이켜보면 애매한 상황에서의 등판이 잦았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다른 구단의 마무리들처럼 9회만 깔끔하게 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굳이 내색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만으로 만족이 되거든요. 무엇보다 핑계를 대면 끝이 없기도 하고요. 팀이 그만큼 저를 필요로 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넥센이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루려면 허리 강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겠군요.

현 전력에 수준급 중간계투가 한 명 가세한다면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 같습니다(웃음). 물론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우리 팀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이겠지요.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더 좋은 투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몸만 피곤해지거든요. 스트레스도 받고. ‘이것 또한 내 것이다’라고 마음을 가다듬는 게 가장 속 편한 것 같습니다. 사실 야구라서 이해해야 할 문제입니다. 팀마다 놓인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팀워크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그게 야구가 주는 매력이기도 하고요.

친구인 오승환에 가려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는데요.

승환이는 경쟁자라기보다 친구죠. 구원투수의 아픔을 터놓고 나눌 수 있어 누구보다 정이 갑니다. 솔직히 프로야구에서 구원투수가 많이 저평가되잖아요. 중간계투, 마무리 등 불펜을 지키는 투수라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어디 매일 경기를 준비하는 게 쉬운가요. 그래서인지 저는 스타가 되거나 많은 인기를 누리는 데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잘하면 인정받고 못하면 사라지는 게 프로야구잖습니까. 냉정한 이 바닥에서 열심히 던지며 오랫동안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니폼을 벗는 날까지 개인타이틀이나 성적은 신경을 쓰지 않을 겁니다.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성과는 자연스레 따라 올거라 믿습니다.

그래도 정말 이루고 싶은 것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데.

아까도 언급했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공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그게 뭔가요. 구속 증강인가요. 묵직한 볼 끝인가요.

구속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시속 140km든 150km든 볼 끝의 움직임이 좋아야 타자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시즌 한 달 정도를 남겨놓고 볼이 꽤 좋았습니다. 그래서 겨우 자신감을 되찾았죠. 내년은 분명 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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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올해처럼 역동적인 투구 폼을 선보일 건가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웃음). 사실 제 폼은 그리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몸의 탄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건데 이렇게 계속하게 되면 몸에 무리가 올 수 있습니다.

투구 폼을 따라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적잖게 보이던데요.

찾아가서 만류하고 싶네요. 정말 권하고 싶지 않거든요. 저도 처음부터 이런 자세로 공을 던진 건 아니었습니다. 사실 투구동작은 다른 선수들과 거의 비슷합니다. 피니시 자세에서 몸을 날리는 게 다를 뿐입니다. 어찌됐든 특정 선수의 폼을 따라하는 건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언제부터 피니시 동작에서 몸을 날렸나요.

스프링캠프에서 피칭할 땐 그런 착지 동작이 나오지 않습니다. 실전에서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긴장하거나 집중력이 높아지면 혼신의 힘을 다해 던져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때마다 자연스레 몸을 날리게 됩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점프를 많이 하는지 몰랐습니다.

투구 폼을 보면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단 한 개의 공도 건성으로 던진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제 공을 믿고 포수 미트를 향해 던졌던 것 같습니다. 후배들이 투구 폼을 따라할 때마다 당황스럽긴 합니다. (문)성현이가 제일 잘 따라합니다(웃음).

3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멋진 외모를 자랑합니다. 비결이 뭔가요.

솔직히 많이 망가졌습니다(웃음). 결혼한 뒤로 제 자신에게 투자를 덜 하게 되더라고요. 이젠 집, 경기장밖에 모르는 아빠입니다. 이전엔 미용실도 자주 가고 쇼핑도 즐겼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내조를 꽤 잘한다고 소문났던데.

무엇보다 알뜰합니다. 이전에는 후배들에게 밥을 많이 사줬는데 지금은 용돈을 받는 처지라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웃음). 아내가 힘들 때마다 편지를 써주는데 그게 큰 힘이 됩니다. 일기를 쓰게 된 것도 아내 때문이었어요. 공책 몇 권과 빨간 펜 몇 자루를 선물로 건네며 제 자신에 대해 공부하라고 하더라고요. 빨간 색으로 써야만 복이 들어온다고도 했습니다(웃음). 그렇게 적기 시작한 일기가 이젠 제 보물 1호가 됐습니다. 슬럼프의 징조가 느껴질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습니다.

[피플+]손승락 "제 고충, 승환이만 알 거예요"(일문일답) 원본보기 아이콘

일기에 선발투수에 대한 미련도 적혀 있나요.

물론이죠. 기회만 주어진다면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마무리를 하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됐거든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일 텐데요.

공을 놓는 포인트나 볼 배합에 변화를 준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승을 따내겠단 말은 할 수 없지만 지구력을 조금 더 끌어올린다면 팬들에게 충분히 놀라움을 안겨줄 수 있을 겁니다.

선발투수로 뛴 2005년과 2006년, 11승 15패를 기록했습니다. 완투는 한 차례 있었고요.

2006시즌은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습니다. 초반 5경기에서 0점대 평균자책점을 남기고 2군으로 내려갔는데 빨리 마운드에 오르고 싶은 나머지 무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수술대에도 올랐고요.

무리수를 뒀던 이유가 있었나요.

쟁쟁한 투수진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출전에 욕심이 나기도 했고요. 물론 지금은 모든 욕심을 버렸습니다. 되돌아보니 긍정적인 생각 덕을 많이 본 것 같네요. WBC까지 출전하게 됐으니 말입니다(웃음).

사실 WBC만큼이나 넥센의 가을야구도 중요합니다.

내년에는 반드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겁니다.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만한 전력이라 생각합니다. 그간 고생했던 동료들과 꼭 짜릿함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겉으로 열망을 드러내진 않겠습니다. 너무 내비치면 염원이 달아날 수 있으니까요. 마음 속 깊은 곳에 바람을 담아두고 꾸준히 전진하겠습니다.

꿈꾸는 모습이 있는 것 같군요.
어떻게 아셨죠(웃음)? 눈치를 채셨겠지만 넥센이 창단 첫 우승을 거두는 마지막 마운드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장)원삼(삼성)이, (황)재균(롯데)이, (마)일영이 형, (정)성훈(LG)이 형 등은 떠났지만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버텼던 선후배들이 아직 선수단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고진감래의 롤 모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이종길 기자 leemean@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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