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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인천의 전설, 독일에서 공을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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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인천의 전설, 독일에서 공을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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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라돈! 야 임마, 투게더!"

게으름 피우는 외국인 선수에게 외치는 한 마디.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 나오는 이 대사는, 아마 임중용이 현역 시절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따로 있다.
"내겐 인천의 엠블럼이 곧 태극마크였다."

어떤 의미에선 정말 그랬다. 보통 축구 선수는 A매치에 뛰면서 유명해진다. 임중용은 달랐다. 그는 대표팀 경험이 없다. 대신 인천 유나이티드에 뛰면서 이름을 알렸다. 문학은 상암보다 소중한 곳이었고, 미추홀 보이즈는 붉은 악마보다 고마운 존재였다.

지난해 10월 임중용이 은퇴했을 때 인천 팬들은 그에게 '레전드'란 칭호를 붙이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쉬운 길을 걸은 이에게 '전설'이란 단어의 품격은 맞지 않는다. 시민구단 인천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그 시작이었던 2004년부터 임중용은 줄곧 주장을 맡았다. 열악한 재정 탓에 팀은 줄곧 약체였다. 자연스레 수세에 몰리는 시간은 길었다. 중앙 수비수인 그는 온 몸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야 했다. 그 탓에 경기 도중 실신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늘 인천의 뒷문을 지켰다. 그리고 팀을 사랑했다. 더 좋은 연봉 조건을 들이밀어도 임중용의 선택은 늘 검푸른 인천 유니폼이었다.
그는 숫자가 담지 못하는 특별함을 가진 존재였다. 인천에서의 8년 동안 기록은 219경기 6골 2도움. 우승 트로피는 물론 500경기 출장이나 100골 같은 대기록도 없다. 대신 왼팔의 주장 완장은 피부와도 같았고, 인천 팬들에게 등번호 20번은 홍명보가 아닌 임중용의 번호였다. 지금도 인천 팬들은 가장 사랑하는 선수로 임중용을 꼽는다.

전설은 다시 한 번 쉽지 않은 길을 택했다. 은퇴 직후, 그는 인천으로부터 제의받은 코치직을 마다하고 무작정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표는 하나였다. 지도자로서 인천을 더 강한 팀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선진 축구를 배워야 했다. 굳은 각오는 자존심마저 버리게 했다. 배울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냉대와 무시 속에서도 공을 줍고, 물을 날랐다. 추방 당할 위기까지 겪었다.

성실함과 겸손함은 차갑게 닫혀 있던 독일인들의 마음 문을 열어 젖혔다. 하늘도 그의 편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연의 끈이 이어졌다. 덕분에 분데스리가 명문팀은 동양에서 날아온 낯선 이를 정식 코치로 받아 들였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전설의 또 다른 발걸음이 시작된 셈. 분데스리가 휴식기를 맞아 일시 귀국한 그를 만나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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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레전드, 낯선 독일로 향하다

반갑다. 지난해 10월 30일 은퇴 경기 이후 1년 만이다. 그래서일까. 아직은 '임중용 코치'보단 임중용 선수, 임중용 주장이란 말이 입에서 맴돈다
어색하면 그냥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웃음)

그게 더 어색할 것 같다. 지난 1년 간 어떻게 지냈나
은퇴 직후 인천과 진로를 상의했다. 그때 허정무 감독님께서 "곧장 코칭스태프에 합류할 수도 있지만, 네가 하고 싶은 걸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고민 끝에 구단만 도와준다면 유럽에서 축구 공부를 해보고 싶단 결론을 내렸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넉넉잖은 구단 살림에 은퇴시켜주고 해외 연수까지 보내주는 게 보통 일인가. 그런데도 구단과 허 감독님께서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곧바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특별히 독일을 택한 이유가 있었나
처음엔 독일은 생각도 안했다. 무조건 영국이었다. 주변에서도 다 영국을 추천하더라.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아는 사람도 없고, 텃세도 심해서 특정 팀에 들어가 공부한다는 게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졌다. 그때 아내가 넌지시 "굳이 영국을 고집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문득 독일 브레멘에서 유학 사업을 하는 후배가 떠올랐다. 무작정 전화했더니 반색하며 기꺼이 도와주겠다더라. 결심의 계기는 장외룡 감독님이셨다. 독일이 유소년 시스템도 잘 돼있고 지인도 있어 정착하기 편할 테니 좋은 선택이 될 거라고 조언해주셨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독일로 날아갔다.

잠깐. 그럼 구단 간 협조가 아니라 그냥 무작정 브레멘에 갔단 말인가
그렇다. 솔직히 '맨땅에 헤딩'이었다. 처음 몇 달은 독일어 공부만으로도 버거웠다. 나이 들어 공부하려니 죽겠더라.(웃음) 얼마 뒤 후배 소개로 4부 리그 팀을 소개받아 코치로 합류했다. 2군과 유소년 팀에서 지내며 가끔씩 경기를 보는 게 전부였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지역 연고 팀인 베르더 브레멘에 연수 문의를 했다. 인천 구단 쪽 공문까지 동봉했는데, 불쑥 찾아 그랬는지 답장이 없었다. 상심한 채로 브레멘 경기를 보러 갔는데, 어디서 많이 본 분이 그라운드에 있는 거다. 자세히 보니 인천 창단 멤버셨던 미하엘 크라프트 코치 같았다. 긴가민가한 채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정말 브레멘 1군 골키퍼 코치로 계시더라.

기막힌 우연이다. 아니,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운 좋게도 내가 있던 4부팀 코치가 크라프트 코치님과 아는 사이더라. 그래서 찾아뵙고 싶다고 하니 약속을 잡아줬다. 크라프트 코치님이 인천에 대해 애착이 많으셨다. 또 내가 그때 주장이었으니까. 만나 뵙자마자 굉장히 반가워하셨다. 독일로 축구 연수를 왔다고 하니까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도 하셨다.

[사진=임중용(왼쪽)과 크라프트 코치(오른쪽)]

[사진=임중용(왼쪽)과 크라프트 코치(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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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곤 해도 브레멘에 들어가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공교롭게도 그 때 브레멘 1군이 전지훈련을 떠날 때였다. 그래서 크라프트 코치님이 토마스 볼프 2군 감독을 소개시켜 주셨다. 사실 첫 이미지는 안 좋았다. 독일 사람들이 사전 약속을 굉장히 중요시하지 않나. 구단 사무실로 볼프 감독을 찾아갔는데, 뭔가 연락이 잘못됐는지 약속이 안 돼 있던 거였다. 처음엔 뭐냐고 버럭 하더라. 내 통역이 여자 분이셨는데, 독일 남자들이 또 여자 부탁은 잘 거절 못하는 것 같다. (웃음) 그 분이 "크라프트 코치 제자가 한국에서 축구 유학을 왔다"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볼프 감독도 이내 화를 누그러뜨리고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그리곤 곧바로 그 다음 주부터 훈련을 참관하라고 하셨다.

"지성이면 감천"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린 셈이지만, 그때도 정식 코치로 시작한 건 아니었나보다
처음엔 참관 자격이었다. 당연히 구단 물품도 지급되지 않았다. 그래도 구색은 맞춰야겠다 싶어서 브레멘 팬샵에 가서 구단 트레이닝복과 비슷한 옷을 사 입었다. 막상 훈련장에 가보니 옷이 조금 달랐다. (웃음) 처음엔 2군 선수들과 같이 훈련도 하고 연습경기까지 뛰었다. 은퇴하고 운동을 거의 안했던 터라 죽겠더라. 열흘 정도 지나고 감독에게 "도저히 못하겠다. 난 여기 스터디, 공부하러 온 거다"라고 하니 웃으면서 일단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별수 있나. 그냥 있는 힘껏 했다. 항상 훈련장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훈련 시작하고 끝날 때 공도 나르고 물도 갖다 줬다. 감독 쫓아다니면서 장비도 나르고.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일부러 그런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맞다. 지켜본 거였다. 볼프 감독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미팅을 하자고 했다. 따라갔더니 내게 "그동안 이 곳에 너처럼 축구 공부하러 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단 한 명도 성실한 경우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곤 "미스터 임은 배우려는 자세가 돼있다. 내일부터 정식으로 코치 수업을 받아라"고 말해줬다. 곧바로 구단 물품도 배급받았다. 제대로 맞춰 입으니까 더 이상 뻘줌하지도 않고(웃음), '이 사람들이 정말 나를 믿고 인정해주는구나'란 생각도 들어 뛸 듯이 기뻤다. 그 뒤론 술술 풀렸다. 단장과 토마스 샤프 1군 감독을 만났는데, 크라프트 제자라고 하니 잘 배우고 가라고 덕담을 건넨 뒤 정식 연수코치 자격을 부여했다. 샤프 감독이 13년 동안 브레멘에 있었는데, 공부하러 온 사람 중 이렇게 경기장이나 라커룸 출입까지 허락한 경우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거다.

무슨 '인간극장'을 보는 기분이다. 독일은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나라인데,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 코치진에 합류하게 되는 게 가능한가. 또 동양인이다 보니 텃세나 차별도 꽤 심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거기도 사람 사는 동네니까. (웃음) 솔직히 처음엔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무시도 당했다. 2군 감독이 날 처음 소개할 때 다들 내가 선수로 온줄 알더라. 동양인은 얼굴만 봐선 나이를 잘 모르니까. 내가 38살이라고 하니 하나같이 놀랬다. 또 말은 안 통해도 상대방이 날 무시한다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지 않나. 2군 코치는 훈련할 때 내게 멀리 떨어진 공 주워오라고 명령조로 얘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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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난 여기 배우러 온 거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코치가 내 현역시절 프로필을 달라고 했다. 프로필은 없고 마침 인천 팬들이 선물로 줬던 응원 카드나 기념품 등을 챙겨갔던 터였다. 그걸 건네줬는데 다음날 내게 와서 "너 K리그에서 굉장히 유명한 선수였더라"고 웃으며 아는 척을 했다. 아마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좀 찾아봤나 보다. (웃음) 그 뒤로는 더 이상 날 무시하지 않더라.

그 외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
사실 앞에서 얘기한 건 다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독일 사람들 처음엔 차갑고 예의를 중요시하는 것 같아도, 한번 마음을 열면 정말 따뜻하게 대해준다. 또 정식으로 팀에 합류한 뒤엔 다들 굉장히 잘해줬다. 가장 골치 아픈 건 비자 문제였다. 내가 처음 들어갈 때 3개월 어학 비자를 받고 들어갔다. 이후 비자를 연장하려 했는데 계속 거부당했다. 축구 연수로 왔다고 하니 그런 걸로는 비자를 연장해준 전례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하더라. 결국 8월 말까지 출국하라는 통보가 왔다. 브레멘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기분이었겠다
곧바로 구단 고문 변호사를 찾아갔더니 심각한 상황이라더라. 다행히 구단 측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연수 자격으론 비자 발급이 안 되니, 브레멘 소속 코치로 정식 계약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대신 난 인천 구단의 지원으로 독일에서 공부 중이었기에, 브레멘 쪽으로부터 급여를 받진 않기로 했다. 서로 윈-윈한 셈이었다. 덕분에 바로 비자가 발급됐다. 돌이켜보면 참 운이 좋았다. 아내도 신기하다고 했다. (웃음)

생생한 분데스리가 체험기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친 끝에 분데스리가 명문에서 코치 수업을 받게 됐다. 지난 5개월 동안 직접 부딪혀본 독일 축구는 어떤 느낌이었나
개인적으로 분데스리가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는 생각은 들진 않았다. 독일 축구가 별로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그만큼 K리그도 발전했다는 뜻이다. 또 분데스리가는 유럽축구연맹(UEFA) 가맹국 선수들은 모두 내국인 선수로 분류한다. 그 덕에 좋은 해외 선수가 많이 모여서 그렇지, 개인 기량 면에서 독일 자국 선수나 한국 선수나 별 차이는 없다고 느꼈다. 다만 경기 운영이나 특정 포지션의 시스템은 좀 달랐다. 수비를 예로 든다면, K리그는 풀백 공격 가담도 활발하고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는 데 반해 독일은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편이다. 풀백은 나갈 때만 확실히 나가고 평상시엔 최대한 수비에 전념한다.

실제로 보니 이건 좀 예상과 달랐다 하는 부분은 없었나
왜 독일하면 '선 굵은 축구'란 말을 떠올리지 않나. 전혀 아니었다. 수비부터 패스로 차근차근 올라간다. 훈련 때도 마찬가지다. 브레멘만 해도 1군부터 유소년 팀에 이르기까지 모두 패스 훈련을 가장 강조한다. 샤프 감독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재밌는 축구를 위해서"라고 했다. 한 마디로 팬들을 위한 노력이란 얘기였다.

샤프 감독은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감독이다. 지도자의 길에 막 입문한 사람으로서 보고 느낀 점이 많았을텐데
선수와 감독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서 배운 점이 많다. 1군 경기 라커룸에 들어가면, 감독과 선수가 거리낌 없이 서로 생각을 나누는 모습을 종종 본다. 또 전반전에 지고 들어오더라도 샤프 감독은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오히려 자신 있게 하라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런 점은 장외룡 감독님과 비슷했다. 훈련 때도 마찬가지다. 특정 선수에 대해 지적할 일이 생겨도 절대로 따로 불러 혼내지 않고,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얘기한다. 또 경기 도중에라도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바로 수정하는 것은 물론, 그라운드 밖에선 알 수 없는 점을 선수에게 직접 듣기 위해서다. 그러다보니 선수도 감독을 믿게 되고, 팀 전체가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곳에서 축구 내적으로도 배우고 있지만, 감독이 선수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모습에서도 많은 걸 느낀다.

[사진=독일 연수를 마친 뒤 브레멘 U-23 팀과]

[사진=독일 연수를 마친 뒤 브레멘 U-23 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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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와는 다른 독특한 훈련 프로그램은 없나
대부분 비슷하다. 다만 경기 당일 준비 방식이 좀 다르다. 만약 저녁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국 선수들은 아침에 가벼운 산책만 한 뒤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비축하는데, 브레멘은 오전에 나와 5대2 미니 게임을 하거나 스피드 훈련을 한다. 호기심이 생겨 물어봤다. 그러자 "한국에서 하는 방식도 좋지만, 이렇게 볼 감각도 찾고 선수들끼리 호흡을 맞출 필요도 있다"고 얘기하더라. 흥미로운 것은 프리킥 전담 키커는 예외란 점이다. 오전 훈련 내내 프리킥만 찬다. 그 선수는 그게 주 임무고 책임이니까. 같은 이유로 공격수는 슈팅 연습만, 측면 미드필더나 풀백은 크로스만 연습한다. 그런 점은 K리그도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

부러웠던 독일의 축구 열기

분데스리가 하면 전 세계 프로축구 가운데 가장 많은 관중수를 자랑하는 리그 아닌가. 실제로 열기가 얼마나 대단하던가
가장 부러웠던 점이다. 독일 사람들은 정말 축구를 엄청나게 사랑한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모두가 축구에 열광한다. 경기 전날부터 축구장 주변은 교통 통제에 들어간다. 매 경기 만원 관중이 들어차고, 백화점과 마트의 대형TV는 늘 축구 중계를 틀어놓는다. 한 번은 경기장 맨 앞줄에 앉아 관전하다 뒤를 돌아봤는데, 관중석을 꽉 채운 모습이 정말 장관이더라.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도르트문트와의 홈경기 때는 원정 팬들이 관중석 절반을 노랗게 물들여버리기도 했다. 바이에른 뮌헨 경기는 암표만도 20만원이 넘는다. 그런 분위기다 보니 선수들은 몸 사리는 법도 없고, 더 신이 나서 뛰는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K리그도 관중만 많아진다면 더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흥행이 잘되는 리그인 만큼 마케팅 면에서도 본받을 만한 점이 많겠다
연계 서비스가 좋다. 축구 입장권만 있으면 그날에 한해 버스나 기차는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브레멘은 물론 주변 니더작센 주(州)까지 적용되기 때문에 하노버나 볼프스부르크 같은 인근 지역으로 원정 응원가기도 좋다. 또 경기장 내 물품 반입이 금지된 대신, 일정 금액을 채운 전용 카드를 구입해 음식물이나 물품을 살 수 있다. 독일은 맥주가 유명하지 않나. 경기장 내에서 사용하는 맥주컵에도 일일이 감독과 선수들의 사진과 사인이 박혀있다.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기울였다.

선수단의 팬서비스 활동도 활발하겠다
팬들과의 접촉점이 많다. K리그에선 보통 경기 다음날 가벼운 회복훈련을 하거나 휴식을 갖는데, 브레멘은 훈련장으로 나오라고 하더라. 갔더니 사이클 복장과 브레멘 엠블럼이 박힌 자전거를 나눠줬다. 브레멘 시는 강을 중심으로 자전거 도로가 굉장히 잘 정비돼있는데, 감독 이하 모든 선수들이 자전거를 타고 일렬로 도시를 한 바퀴 돈다. 50명이 그렇게 달리면서 지나가던 시민들과 인사하고, 중간 중간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는다. 몇몇 선수는 등에 장난스런 문구나 다음 홈경기 광고를 써 붙이기도 한다. 회복 훈련과 팬서비스를 동시에 하는 셈이다. 또 훈련장 수영장을 개방해서 선수들과 시민들이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단, 수영장에선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나도 한번 멋모르고 카메라 들었다가 혼난 적 있다.(웃음)

"에두는 만냤나고?"

갑자기 드는 궁금증이다. 짓궂은 질문 하나 하겠다. 혹시 에두는 만났나?
뭘 또 그런 걸 묻나. (웃음) 아니다. 못 만났다. 샬케04에서 뛴다고 들었는데 독일 내 다른 팀으로 이적했더라. 현역 시절 자주 부딪혀서 악감정 남은 거 아니냔 얘기도 있던데, 전혀 아니다. 한국 떠날 땐 좋게 헤어졌다. 좋은 선수고 좋은 친구다.

독일에선 여전히 차범근이 가장 유명한 한국 선수라고 하던데 정말인가?
물론 차범근 감독님 인기와 명성은 아직 대단한데, 지금은 손흥민이 제일 인기 많다. (웃음) 함부르크 뿐 아니라 전국구 스타다. 구자철도 대부분 안다. 워낙 잘하지 않나. 이동국도 기억한다. 예전에 브레멘에서 뛰었을 때 잘했다고 하더라. 크라프트 코치님은 내가 처음 왔을 때 특정 한국 선수 이름을 거론하며 좀 알아봐 줄 수 있냐고 묻기도 하셨다. 독일 내에서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다.

독일엔 일본 선수도 굉장히 많지 않나
각 팀마다 일본 선수가 하나씩은 있다. 브레멘에도 유소년 팀에 일본 선수가 둘이나 있다. 다만 일본은 유명 스카우트를 통해 장기간 분데스리가 진출 창구를 개척했을 뿐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보다 근성도 있고 독일 축구와 잘 맞는다. 길만 잘 열린다면 일본 이상의 성과를 낼 것이다. 개인적 생각으론 공격수보다 수비수들이 독일에서 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런 면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반년이란 시간이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참 많은 걸 배우고 얻은 듯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참 기막힌 인연이었다. 사실 후배 하나 믿고 무작정 독일로 넘어갈 땐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예전 스승과 우연히 재회하고, 또 분데스리가 명문팀에 들어가 정식으로 배우게 됐으니. 나를 믿고 보내준 인천에게도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당초 1년 연수한 뒤 이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었는데, 얼마 전 인천 구단을 방문해 내 성과를 보여주니 만족해하며 1년 더 배우고 오도록 도와줬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귀국하기 전 샤프 감독님이 혹시 이번에 못 돌아오더라도 언제든지 환영할 테니 부담 없이 찾으라고 해주셨다. 감독님부터 브레멘 구단 관계자 모두 정말 잘해줘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진=브레멘 1군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이 그에게 선물한 사인 유니폼]

[사진=브레멘 1군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이 그에게 선물한 사인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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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임중용 하면 인천, 인천하면 임중용 아니었나. 외로운 타지 생활 속에서 친정팀이 많이 그리웠을 것 같은데
독일 갈 때 인천 구단 물품을 챙겨갔다. 한동안은 잘 때도 인천 트레이닝복 입고 잤을 정도다. (웃음) 경기장에 인천 엠블럼이 새겨진 점퍼를 걸치고 몇 번 갔는데, 독일 사람들이 처음 보는 팀이라며 어디냐고 묻더라. K리그에서 공부하러 왔다고 하면 다들 반가워했다. 그런데 같이 갔던 후배 놈은 AC밀란 점퍼를 입고 갔다가 봉변 좀 당했다. (웃음) 그래서 내 옷 하나 선물로 주고 왔다.

독일에서도 인천 소식은 많이 접했나
주로 SNS로 사진이나 경기 결과를 챙겨봤다. 브레멘 선수들은 어떻게 찾아봤는지 K리그 경기 다음날이면 내게 와서 '너희 팀 어제 1-2로 졌더라'고 놀리기도 했다. (웃음) 사실 올해 승강제가 신설된 터라 인천이 시즌 초 최하위로 떨어져 걱정도 많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상궤도에 오를 거란 믿음은 있었다. 특히 이럴 땐 팀 내 고참의 역할이 중요한데, 인천엔 설기현, 김남일 같은 베테랑이 있지 않은가. 좀 다른 얘기지만 K리그도 이젠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올해만 감독이 10명이나 바뀌었다. 유럽은 그 정도까지 단기간 성적에 얽매이지 않는다. 감독이나 선수든 한 번 믿었으면 꾸준히 신뢰를 주며 기다리는 맛이 있다.

임중용의 복귀를 기다리는 인천 팬이 많다
나도 빨리 인천 팬들과 함께 하고 싶다. 안 그래도 귀국한 뒤 며칠 있다가 서포터즈 실무진을 만나 밥 한 끼 샀다. 사실 작년 은퇴할 때도 80명 정도 되는 서포터즈를 불러 당시 부단장님과 함께 식사 대접을 했다. 알려지는 건 싫었다. 괜히 생색낸다는 말 들을까봐 조심스럽더라. 그냥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게 사람 사는 모습 아니겠나.

인천에 대한 애착이 참 남다르다. 지난해 은퇴할 땐 '인천 엠블렘이 내겐 곧 태극마크였다'란 말을 남기기도 했었다
내가 태극마크를 단 적이 없어서 그렇다. (웃음) 농담이다. 인천에 와서 대표팀에서 뛰는 것만큼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말도 한 거다. 사실 운동 선수하면서 굴곡이 심했다. 인천유니폼을 입기 전에는 진지하게 선수 생활을 그만 두려고도 했다. 인천에 오면서 빛을 봤다. 인천에서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으니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독일에 인천 옷 가져간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선수가 한 팀에서 오래 뛰고, 팀은 그를 레전드로 예우해주고, 팬들은 변함없이 사랑해주는…이런 팀 만나는 거 쉬운 일이 아니다.

아, 독일은 그런 분위기가 잘 형성돼있더라. K리그도 본받았으면 하는 점이다. 선수도 잘해야 한다. 난 현역 시절 연봉 더 준다던 팀도 있었지만 인천에 남았다. 혹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아무리 좋은 제의가 와도 무조건 인천에 돌아갈 거다. 난 이게 당연한 것 같은데, 요즘 선수들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김봉길 인천 감독님을 뵈었는데, 젊은 선수들이 내년에 다른 팀으로 떠날 까봐 노심초사하시더라. 난 "정이란 게 있는데 설마 그러겠습니까"라고 했더니 감독님께서 "중용아, 요즘 애들은 예전 같지 않다"하시며 쓴웃음을 지으셨다.

[사진=연수 기간 직접 작성한 훈련 일지와 브레멘 코치 계약서]

[사진=연수 기간 직접 작성한 훈련 일지와 브레멘 코치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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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인터뷰 동안 많은 얘기를 들려줘서 즐거웠다. 끝으로 지도자로서 목표가 있다면
소위 말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인천이 나를 믿고 공부할 기회를 줬다. 나도 인천을 더 좋은 팀으로 만들고 싶어 독일로 갔다. 잘 배우고 돌아와 내 모든 걸 인천에게 돌려줄 것이다. 프로 선수들은 물론 유소년 팀을 가르치는데 있어 독일 축구의 여러 장점을 접목시키고 싶다. 뿌리부터 배워서 뿌리부터 좋은 팀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다. 나아가 선수들과 융화될 줄 알고, 믿음을 줄줄 아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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