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 언동에 복수국적자 오신, 국적 취득 기회 보호해야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스스로를 복수국적자로 오신해 한국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잃었더라도 행정기관의 공적 언동 등이 원인이라면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조일영 부장판사)는 정(21·여)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국적선택신고수리거부처분 취소를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정씨는 미국 국적을 지닌 아버지와 한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국내 출생했다. 정씨는 아버지의 혈통을 따르도록 한 개정 전 국적법에 따라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후 아버지의 한국 국적 회복에 따라 미성년자였던 지난 1995년 출생신고와 더불어 주민번호를 부여받았다.
정씨는 한국에서 초·중·고 학업을 마치고 여권도 발급받는 등 정상적으로 행정서비스가 제공되는 만큼 자신을 복수국적자로 생각해 지난 2월 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과 함께 대한민국 국적 선택을 신고했다. 국적법은 2010년 5월 개정을 거쳐 만 20세 이전 복수국적자로 하여금 개정 이전의 국적포기 대신 만22세까지 하나의 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법무부는 그러나 정씨가 복수국적자에 해당하지 않아 국적선택의무도 없다며 신고수리를 거부했다. 개정 전 국적법에 따르면 정씨는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한 자가 6월이 경과하여도 외국 국적을 상실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해 이미 지난 1996년 한국 국적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에 정씨는 “국척취득 신고를 따로 하지 않은 것은 행정청의 공적 견해표명을 믿은 탓”이라며 처분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행정청의 견해표명이 정당하다고 믿은 데 따른 귀책사유는 (신청자의)부정행위에 따른 것이거나 하자가 있음을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로 해석함이 상당하다”며 “관계자 모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어 “복수의 행정청이 정씨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는 취지의 공적 견해표명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정씨의 부정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없고 적법하게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신뢰한 데 귀책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는 점, 이로 인해 국적 취득 기회를 상실한 점 등을 고려해 법무부 회신은 신뢰보호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법 해석상 달리 볼 여지가 있더라도 행정기관의 공적 언동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판결에 따르면 법무부는 정씨의 신고를 수리해 국적을 선택할 기회를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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