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아시아블로그]영화 집으로 그리고 할머니와 손자의 비극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아시아경제 김경훈 기자]#.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고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한참 걸어 엄마와 7살 상우는 외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향합니다. 형편이 어려워진 상우엄마가 잠시 상우를 외할머니 댁에 맡기기로 했기때문입니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외할머니와 시골 외딴 집에 남겨진 상우. 전자오락기와 롤러블레이드에 파묻혀 살던 상우는 배터리도 팔지 않는 시골에서 생애 최초의 시련을 겪게됩니다.
배터리를 사기 위해 할머니의 은비녀를 훔치고, 구들장이 꺼지도록 롤러블레이드를 타던 상우는 프라이드 치킨 대신 '물에 빠진 닭'과 함께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먹고 한뼘 성장해서 엄마를 따라 다시 도시로 돌아옵니다.

지난 2002년 개봉해 큰 사랑을 받은 영화 '집으로'의 장면들입니다. 외할머니와 손자가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아낸 이 영화는 꾸미지 않은 소박한 화면과 잔잔한 감동으로 흥행면에 있어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집으로가 개봉한 지 10년이 지난 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전기요금을 못내서 촛불을 켜놓고 생활하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할머니와 손자의 비극이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고흥의 시골집에서 여섯 살 외손자와 사는 노부부가 전등을 켜지 않고 지낸 것은 10월 말부터였습니다. 5월부터 6개월간 전기요금 15만7740원이 밀리자 한국전력은 '전류제한기'를 달아놓았습니다. 전기 소모가 큰 제품은 못 써도 전등이나 냉장고 정도는 쓸 수 있지만 노부부는 전기가 끊긴 것으로 오인한 듯 밤마다 촛불을 켜고 지냈다고 합니다.

이불을 겹겹이 덮고 잠을 청했던 어느 추운 밤 이들 가족에게 비극은 찾아왔습니다. 오줌이 마렵다고 칭얼대는 손자를 돌보느라 촛불을 켜고 그대로 잠이 든 뒤 양초가 쓰러져 불이 났습니다. 휴대전화도 없고 집 전화도 요금 미납으로 끊긴 상태에서 할아버지는 119에 신고하러 허둥지둥 달려 나갔고 불 끈다고 남았던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넉넉하지 못한 한 가정의 불행으로 또는 '팔자'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할머니와 손자의 목숨을 끊은 건 화마(火魔)였지만 이들의 삶의 끈은 그 전부터 가난과 주위의 무관심에 의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 아니었을까요.

전기를 끊어버린 한국전력에게 비난과 질타의 화살을 쏟아붓기에는 우리 모두가 이들의 죽음 앞에서 결코 떳떳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 약자인 노인과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제도적보장 마련에 소홀했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다시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경훈 기자 styxx@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뒷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