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외할머니와 시골 외딴 집에 남겨진 상우. 전자오락기와 롤러블레이드에 파묻혀 살던 상우는 배터리도 팔지 않는 시골에서 생애 최초의 시련을 겪게됩니다.
지난 2002년 개봉해 큰 사랑을 받은 영화 '집으로'의 장면들입니다. 외할머니와 손자가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아낸 이 영화는 꾸미지 않은 소박한 화면과 잔잔한 감동으로 흥행면에 있어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집으로가 개봉한 지 10년이 지난 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전기요금을 못내서 촛불을 켜놓고 생활하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할머니와 손자의 비극이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이불을 겹겹이 덮고 잠을 청했던 어느 추운 밤 이들 가족에게 비극은 찾아왔습니다. 오줌이 마렵다고 칭얼대는 손자를 돌보느라 촛불을 켜고 그대로 잠이 든 뒤 양초가 쓰러져 불이 났습니다. 휴대전화도 없고 집 전화도 요금 미납으로 끊긴 상태에서 할아버지는 119에 신고하러 허둥지둥 달려 나갔고 불 끈다고 남았던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넉넉하지 못한 한 가정의 불행으로 또는 '팔자'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할머니와 손자의 목숨을 끊은 건 화마(火魔)였지만 이들의 삶의 끈은 그 전부터 가난과 주위의 무관심에 의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 아니었을까요.
전기를 끊어버린 한국전력에게 비난과 질타의 화살을 쏟아붓기에는 우리 모두가 이들의 죽음 앞에서 결코 떳떳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 약자인 노인과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제도적보장 마련에 소홀했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다시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경훈 기자 sty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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