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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4色으로 찾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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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연출 인터뷰 "베르테르, 2년전에 비해 더 격정적이다"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4色으로 찾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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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너무 자주 롯데를 방문하지 않기로 나는 몇 번이나 결심했네. 그러나 누가 그것을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매일매일 그 유혹에 지고 마네. 그러면서 내일은 꼭 가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하지. 그러나 내일이 되면 또 안 가려야 안 갈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네."(괴테, 1774년)

'베르테르'가 '롯데'를 만난 건 '잘못된 만남'이었을까. 처음에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눈길을 거둘 수 없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그녀의 집앞인 날들이 계속됐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걸 알게 된 후에도 마음이 식기는 커녕 오히려 애가 닳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시작된 것이다.

사랑으로 고통받다 끝내 목숨까지 잃은 베르테르의 비극이 무대에 올랐다. 괴테의 소설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베르테르와 롯데, 롯데의 약혼자 알베르트의 팽팽한 삼각구도는 표정과 몸짓, 대사와 노래로 분출된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조명의 무대는 이들의 감정을 부추기는 데 여념없다. 지난 달 25일 개막한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2년전에 비해 더 풍성하고, 화려하지만 그만큼 비극의 냄새는 더 강하다.
김민정 연출가는 "음악적인 구조, 드라마, 미장센 등 많은 부분에 변화를 줬다. 예전의 정서를 그리워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고, 낯선 점에 흥미를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막 저녁 프리뷰 공연(10월30일)을 앞두고 드레스 리허설을 마친 후 가진 인터뷰 자리였다. 하루종일 극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는 김 연출은 "베르테르 캐릭터도 2년 전에 비해 더 광기가 있다. 예전에는 뭔가 애처로운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격정적이다.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뮤지컬 중에서도 고정팬이 많기로 유명하다. 2000년 11월 초연 당시,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브로드웨이 대작들 틈바구니에도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팬들 덕분이다. 당시 뮤지컬계 최초로 팬클럽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가 결성됐는데, 이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작품을 여러 무대에 올렸던 일화는 유명하다. 2010년부터는 대극장으로 옮겨와 규모를 키웠다.

특히 올해 공연에는 베르테르 역에만 김다현, 김재범, 성두섭, 전동석 등 4명의 배우를 캐스팅했다. 공연이 열리는 유니버설아트센터 건물 앞에는 팬들이 보낸 쌀 화환이 경쟁적으로 비치돼있다. '어떤 베르테르를 고르느냐' 관객들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졌다. 김 연출은 "김재범과 성두섭은 원래 둘이 친한 사이고, 전동석은 워낙 소년 같다. 김다현은 자기가 하는 일을 집중해서 하는 스타일이다. 네 명이라서 힘들지만 즐겁다. 배우로서는 자기 시간이 줄어드니까 더 갖고 싶었을 것인데, 아무도 내색하지 않더라"고 설명했다.
베르테르와 약혼자 알베르트 사이를 오가는 '롯데' 역에는 '삼총사', '지킬앤하이드' 등에 출연했던 실력파 배우 김아선과 '렌트', '금발이 너무해' 등에서 활약했던 김지우가 캐스팅됐다. 4명의 베르테르와 2명의 롯데. 어떤 조합이 가장 이상적일까 묻자 김 연출은 "그걸 말하면 난리난다"며 웃었다. "같은 작품이지만 배우가 다르면 다른 작품이 된다. 그러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가야하는 지점은 같다. 베르테르가 마지막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몰고가는 감정적인 밀도, 이건 가져가야 한다. 그거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게 내 역할이다."

캐스팅 말고도 달라진 부분은 또 있다. 후반부에 로마 시인 '오시안'과 독일의 서정시인 '클롭슈토크'를 인용한 것은 베르테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이전 공연에서는 이들 작품을 그냥 언급하고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시귀를 직접 읽는다. 김 연출은 "오시안은 '어둠의 시인'인데, 그의 작품이 베르테르가 가지고 있는 심리를 더 증폭시켜 준다. 또 '클롭슈토크'에게서는 빛에 관한 구절을 가지고 와 베르테르의 빛과 그림자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롯데'라는 인물도 복합적으로 표현했다. 롯데는 동생들을 보살피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베르테르에 대한 감정에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시대의 다른 여자들과 달리 호메로스와 오시안을 읽는 의외성도 가진다. "단순히 미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문학성이 베르테르를 사로잡았다"는 게 김 연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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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출이 베르테르를 읽은 것은 19살때. 그때는 괴테의 언어가 지루했다. 그러다 2010년 일 때문에 다시 책을 손에 들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베르테르의 감정이 너무나 정확하고 선명하게 그녀에게 와닿았다. '이런 이야기라면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베르테르는 순간을 잡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순간을 너무도 강렬히 원하지만 그건 되게 위험한 유혹이다. 나는 물론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올해로 연출을 맡은 지 13년차 베테랑 연출가지만 김 연출은 여전히 "무대에 한 세상을 세우는 게 정말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연출을 시작한 계기는 특별할 게 없었다. 대학에서 동양사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졸업 당시 어느 길을 갈 지 몰라 무작정 배낭여행 길을 떠났다. "선명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내디딜수 없다"는 게 그녀의 원칙이었고, 그 때는 "어느 길도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때마침 한국예술종학학교 연극원이 개원했다. 무작정 지원을 했는데 4차에 걸친 전형에 계속 붙었다. 그때도 "뭔가 있으니까 나를 합격시켰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연출의 재미에 지금까지 푹 빠져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뭔가를 탄생시킨다는 것에 경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 "고3때도 꼬박꼬박 7시간은 잤는데, 연극원 시절에는 하루 4시간씩 자면서 연출 훈련을 받았다. 연출은 정말 멋지고, 고통스럽고, 순수하게 기쁠 수 있는 일이다. 무대, 조명, 배우, 의상, 음악, 음향 등 모든 것의 연결점이 연출이기 때문에 감이나 상상력만으로는 절대 할 수 없다."

김 연출은 앞으로 12월까지는 꼬박 '베르테르'와 씨름해야 한다. 지난 8월부터 '헤드윅'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난 이후 쉴 틈도 없이 바로 '베르테르'로 돌아왔다. "배역은 그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몸에 영향을 미친다. 공연이 끝나면 그 뒤에 오는 영향 때문에 한두달 씩 파동이 있기도 한다. 이럴 때는 따뜻한 음악을 듣거나, 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치유를 해야 한다. 정작 나는 못하고 있지만..."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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