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한순철, 숱한 역경에도 글러브를 놓지 못한 이유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잃어버린 복싱의 정체성을 찾는데 기여하고 싶다."
24일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교에서 열린 특별 강연. 2012 런던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한순철(서울시청)이 모교 후배들 앞에 섰다. 어색함과 긴장 탓인지 표정은 다소 상기됐고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헝그리 복서’의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마이크 너머로 그가 털어놓은 얘기는 ‘한국 복싱의 희망’이 되기까지 지난 20여 년간의 세월. 고독한 싸움을 이겨낸 열정이 담겨 있었다. 나아가 무너진 한국 복싱의 위상을 다시금 세우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복서 한순철’이 지나온 여정은 절박함 그 자체였다. 속초 설악중학교 시절 처음 글러브와 인연을 맺었다. 이내 복싱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가슴 속엔 최강 복서를 향한 꿈이 자리했다. 첫 번째 목표는 속초 고등학교 입학. 복싱부가 있는데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당부한 아버지의 바람과 맞아떨어졌다. 매일 지쳐 쓰리질 때까지 훈련에 몰두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속초고 입학과 함께 소년 체전을 제패하며 유망주의 길을 걸었다. 기쁨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졸지에 가장이 됐다. 가족들의 생계 문제는 한순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생계 걱정으로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복싱은 내게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싸움터와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이른 나이에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고교 졸업과 함께 국내 최정상급 복서로 발돋움했다. 전국 체전에서 금메달을 휩쓸었고, 두 차례 아시안게임에 나서 은메달(2006)과 동메달(2010)을 각각 따냈다. 자연스레 다음 목표는 올림픽이었다. 첫 번째 도전이었던 2008 베이징올림픽. 야심차게 나섰지만 16강전 참패로 일찌감치 짐을 쌌다. 체급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체중 감량이 독이 됐다.
4년 뒤 런던올림픽. 두 번째이자 사실상 마지막 도전이었다. 어느덧 서른을 앞둔 나이에 병역 의무도 남겨두고 있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물러설 수 없었다. 메달이 절실했던 또 다른 이유는 가족이었다. 그에겐 2년 전 태어난 딸과 오는 12월 결혼을 앞둔 대학생 예비 신부가 있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선 병역 혜택이 필요했다.
그는 "사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B형 간염에 걸려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었다"라고 전제한 뒤 "가족에 대한 걱정과 군 문제 해결에 대한 절박함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것 같다"라고 밝혔다. 후배들에게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 각자 위치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복싱에 대한 뜨거운 애정은 한순철의 정체성이다. 16년 만의 올림픽 메달이란 성과에도 엘리트 복싱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다. 그가 속한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이하 연맹)은 회장 선출 문제로 잡음을 일으켜 국제복싱연맹(AIBA)으로부터 회원자격을 박탈당했다. 한순철은 다른 종목 메달리스트와 달리 아직까지 연맹이 주는 포상금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다.
그는 "복싱이 경제적 지원도 부족하고 훈련이 힘들어 엘리트 선수층이 갈수록 줄고 있다"며 "복싱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느껴져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덧 한국 복싱의 정체성 확립에 맞닿아있다. 학업에 대한 욕심은 같은 맥락에서 선택한 대안이다. 이미 서울문예대(사회체육과) 학사와 용인대 석사를 마친 그는 박사 학위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 복싱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판단에서다.
현역에 대한 의지도 여전하다. 그는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라 다음 올림픽을 기약할 수는 없다"라면서도 "주위 권유도 있고, 복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바라는 차원에서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하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