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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회 국군의 날... 우리軍 얼마나 발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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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회 국군의 날... 우리軍 얼마나 발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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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다. 이 날을 국군의 날로 정한 까닭은 6·25당시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돌파한 1950년 10월 1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 날은 1956년 9월 21일 대통령령 1173호로서 제정됐다. 1976년부터 국군의 날을 공휴일로 제정하여 각종 행사를 벌이며 이 날을 경축해 오고 있다가 1991년부터는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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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국군의날은 64회를 맞았다. 그동안 군의 발전상을 돌이켜보면 많은 것들이 변했다. 전투력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식주가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우리 군 의식주 중에 주거 환경은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창군 초기 구 일본군 막사 등 정상적인 건물을 병영으로 확보한 부대는 극소수였다. 60년대에 들어서 블록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A형 막사를 건립하기 시작했다. 페치카로 난방을 하는 이 막사에는 병력이 소대단위로 수용됐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통합막사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82년까지 지어진 통합막사는 쌓아 올린 블록 위에 평평한 지붕을 덮는 형태로 2개 분대~1개 소대 병력을 수용할 수 있게 지어졌다. 난방장치로는 페치카 대신 방열기를 사용했다. 83년부터는 시멘트 건물로 된 현대식 막사가 지어지기 시작했지만 A형 막사는 90년대까지도 전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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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국방부는 2004년부터 신형 통합생활관을 신축하는 등 병영생활관 개선 사업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신형 통합생활관 확대를 강도 높게 추진해 발주 기준으로 올해 목표치의 100% 달성이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군복도 창군초기에는 통일된 군복 규정 자체가 없었다. 군복은 군인의 멋과 자부심이 담겨 있어야 했지만 당장 입을 전투복 찾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창군초 우리군은 미 육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사용한 1943년형 작업복(M1943 HBT) 상ㆍ하의에 1941년형 야전상의(M1941 필드자켓)을 주로 사용했지만 실제 야전에서는 국산 작업복부터 2차 대전 당시 미군 정글복, 구 일본 군복에 방한용 누비옷을 비롯한 국산 군복까지 혼용했다.

우리 군은 54년 9월 1일 육군 잠정 규정 23호를 통해 통일된 전투복 규격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6·25전쟁 직후의 미군 군복을 모방한 54년형 전투복(당시 용어는 작업복)은 상의 가슴과 하의에 큰 주머니가 달린 것이 특징이었다. 65년부터 착용한 전투복은 팔꿈치와 무릎에 보강용 천을 덧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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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참전 당시의 전투복을 포함해 1980년대까지의 우리 군 전투복은 기본적으로 녹색 내지 그와 유사한 계통의 단일 색상을 채택했다. 하지만 미 육군이 1981년부터 M81 우드랜드 위장무늬를 채용한 전투복(BDU)을 지급하는 등 세계 각국 군대의 군복이 위장무늬로 바뀌는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변화가 필요했다. 위장색 전투복은 단색에 비해 적의 눈에 잘 띄지 않아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이에 우리 군도 1985년부터 위장색 도입을 준비, 1990년 11월 23일 얼룩무늬 위장색 전투복을 정식 도입했다. 이때의 위장색은 녹색의 삼림과 황색의 토양 등 한국의 자연 지형에서 나타나는 색깔을 감안해 흑색 20%, 녹색 30%, 갈색 30%, 모래색 20%으로 구성했다.

신형 디지털무늬 전투복은 2011년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처음 정식으로 공개됐다. 신형 전투복은 흙색, 침엽수색, 수풀색, 나무줄기색, 목탄색 등 5색에 국내 암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강암의 형태를 응용한 무늬가 결합한 ‘디지털 5도색’ 위장무늬를 갖고 있다.

6ㆍ25전쟁 당시 우리군은 쉰 주먹밥도 감지덕지일 만큼 먹을거리 상황이 좋지 않았다. 급식비만하더라도 50년 0.27원에 불과하던 1인당 1일 급식비는 70년 100원, 80년대에 들어서면서 1000원을 돌파하고, 90년대 2000원대에 들어서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올해는 6000원을 넘었다.

보리와 쌀을 혼합해 사용하던 쌀은 80년대까지 100% 통일미로 급식했으나 90년 일반미와 50%씩 섞어 급식하기 시작했고 95년 일반미의 비율을 80%로 높인 후 96년에는 전량 일반미로 급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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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부터 대대급 이상 부대 취사장에 조리요원을 1명씩 배치하는 등 맛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97년에는 1식 4찬이 전체 급식으로 확대됐다. 99년부터는 급식비 증가분을 대부분 장병들이 선호하는 메뉴에 투입하는 등 변화하는 병사들 입맛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햄, 미트볼, 꼬리곰탕, 카레 등의 급식이 늘어나고 미트볼과 꼬리곰탕 등 새로운 메뉴도 추가됐다. 2000년대 중엽부터는 쌀 등 주식 소비량 감소 추세를 반영해 병사들이 선호하는 떡국, 스파케티, 쫄면 등 분식과 양질의 부식과 후식을 보급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2013 국방예산안에는 민간조리원을 현재보다 74명 늘려 총 1547명으로 확대하기 위한 예산도 반영하는 등 맛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양낙규 기자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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