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찬밥 외국선 명품'.. 우울한 의료기기 산업
무한대 성장가능 의료기기 시장.. 전문가들 "산업지원 마스터플랜 세우자"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초음파 한류(韓流)를 아십니까. 외국에서 우리 의료기기는 명품 대접을 받습니다."(송인금 의료기기산업협회장)
"IT와 제조기술의 결합, 한국이 국제적 우위를 선점할 바탕은 충분합니다. 하지만…."(김영호 연세대 교수)
오늘(29일)은 제5회 의료기기의 날이다. 우리가 의료기기의 성장 가능성에 눈을 뜬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의료기기 시장의 폭발적 성장 가능성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과실을 과연 우리 기업들이 따낼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전문가들은 '조건'을 내건다. 조건을 비판으로 바꾸면 "다들 미래만 이야기할 뿐 누구도 마스터플랜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도다.
송인금 의료기기산업협회장(사진)이 말하는 업계 현실은 조금 답답하다. 애초 우리 업체들의 주력 품목은 저가 소모품이었다. 여기서 돈을 벌어 고가 장비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돈줄이 막혔다. 정부가 의료비 부담을 덜겠다고 소모품 가격을 후려치기 시작했고 업체들은 하나둘 사업을 접었다. 빈자리는 중국 업체가 메웠다.
처음엔 의료비가 감소해 좋았다. 하지만 이내 중국업체들은 가격을 올렸다. 국내 업체들이 대부분 이미 사업을 포기해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됐다. 송 회장은 "의료기기 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짧은 안목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우리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키우려면 튼튼한 내수시장은 필수"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일부 업체는 해외 진출을 꾀했다. 실제 우리나라 의료기기 수출액은 연평균 18%의 고성장을 이루고 있다.
송 회장은 "수출 1위 품목인 초음파영상진단장비는 외국에서 명품 취급을 받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선 산업이 영세하다며 무시당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의 의료기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곳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이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전반적 기술경쟁력은 선진국의 약 80%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우리 기업의 기술력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므로 누군가 '불씨'만 지펴주면 크게 성장할 분야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기술력과 자본은 효율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 실력 있는 인력은 연구소나 학교에 '고립'돼 있고 영세한 기업은 상품화 엄두도 못 낸다.
송 회장은 "인허가 규제를 합리화 하는 등 정부의 산업육성 의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무부처에 담당 부서조차 없고 업무도 부처별로 흩어져 있어 체계적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독립된 의료기기 지원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와 학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미래의 의료기기는 IT, BT, NT 등 각 분야가 상호 융합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므로, 이를 아우르는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영호 연세대 교수(의료기기개발촉진센터장)는 "의료기기는 지식집약형 산업으로서 다양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이 매우 유리한 분야"라며 "하지만 국가의 연구개발(R&D) 투자가 미흡한 탓에 하이테크 기반 기술 및 원천기술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욱 애널리스트 역시 "대규모 투자와 비용이 수반되는 산업인 만큼 전문적이고 지속적 지원이 가능한 정부주도의 독립 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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