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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칼럼]앵그리 버드와 한국 정치

최종수정 2020.02.12 15:59 기사입력 2012.04.3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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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양재찬 논설실장

하도 여기저기서 앵그리 버드, 앵그리 버드 하기에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해봤다. 새가 쏜살같이 날아가 성 안에 숨어 있는 돼지를 물리치는 게 통쾌했다. 하지만 한꺼번에 돼지 세 마리를 처치하기는 힘들었다. 재수, 삼수로도 안 돼 칠수(七修) 끝에 무찔러 점수를 높였다.

한국에서 앵그리 버드는 스마트폰 안에만 있지 않다. 4ㆍ11 총선 때 정치판에도 등장했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앵그리 버드 복장으로 유세했지만 떨어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앵그리 버드 캐릭터를 등장시킨 투표 독려 동영상에서 투표율이 70%를 넘으면 춤추며 노래를 부르겠다고 약속했다. 투표율이 18대 총선보다는 높았지만 노래를 부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개표 결과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로 판가름 나자 미소 짓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옆에서 이준석 비대위원이 양 손에 앵그리 버드 인형을 들고 환호했다.
이들이 앵그리 버드(angry bird)를 내세운 것은 2030세대의 표를 의식해서다. 하지만 정작 투표장으로 향한 것은 2030세대가 아닌 중장년층이었다. 기대를 걸었던 앵그리 영(angry young) 세대보다 앵그리 미들(middle)과 앵그리 올드(old) 세대가 움직였다.

자기 것이 아닌 남이 만든 옷과 캐릭터, 인형을 들고 나온 이들에게 마음을 주기에는 이 땅의 2030세대가 처한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힘들게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되고, 그나마 잡은 직장은 월 88만원짜리 비정규직인데 자고 나면 월세와 밥값, 기름값이 오른다. 그래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삼포세대'로 불리는 그들로서는 남의 옷이 아닌 '내 옷'을 당당하게 입고 나오는 인물을 보고 싶다.

하지만 여의도 현실 정치는 2030세대의 바람과 기대의 저 편에 있다. 과반 의석 확보에 흥분한 새누리당은 성추문ㆍ논문표절 당선자를 감쌌다. 민주통합당은 이념의 덫에 빠져 흔들리면서 국민이 아닌 '나꼼수'와 소통하다가 지고도 선전한 것으로 합리화했다. 몸싸움방지법(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여야 이견으로 지난 24일 18대 국회 마지막으로 여겨지던 본회의를 무산시키더니만, 새 대표 선출을 둘러싼 당권 다툼에 몰두하고 있다.
총선 때는 '국민만 바라보겠다' '민생부터 챙기겠다'며 몸을 낮추더니 어느새 과거의 오만한 자세로 돌아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TV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의 '네 가지' 코너를 빗대면 한국 정치는 없어야 할 네 가지-당리당략ㆍ정쟁ㆍ교만ㆍ독선-는 있고, 있어야 할 네 가지-국리민복ㆍ비전ㆍ정책ㆍ상생-는 없는 형국이다.

앵그리 버드가 뭔가. 14년 동안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한 핀란드의 국가대표 노키아가 흔들리자 대타로 급부상한 스타 벤처기업 로비오가 만든 모바일 게임이다. 아무리 재미있고 많은 사람이 즐겨도 남의 나라, 남의 물건이다. 우리 국민은, 특히 2030세대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실력을 보여주는 준비된 대통령 후보를 기대한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꾸미기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이슈를 들고 나와 해결하길 바란다. 앵그리 버드보다 즐거운, 비전과 희망을 주는 정책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라. 그러면 굳이 투표를 권하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새누리당은 벌써 '박근혜 대세론'에 빠져 그의 얼굴만 쳐다보며 경선 없이 대선 후보로 추대하자고도 한다. 민주통합당은 총선 패배에 대한 반성은 있었는지도 모르게 원내 대표, 당 대표 선거판을 벌이다가 나눠먹기 논란에 빠졌다. 따지고 보면 각 정당의 적(敵)은 상대 당과 후보라기보다 그 당 내부, 자신들이다. 시인 조병화는 시 '천적'에 이렇게 적었다.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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