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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비>, 첫사랑은 꼭 진부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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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비> 1회 KBS2 월-화 밤 9시 55분
남자는 첫 눈에 반한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는 기쁨에 비에 흠뻑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다. 하얀 블라우스와 긴 치마를 입은 여자는 옷차림만큼이나 참한 글씨체로 채워나간 일기장을 갖고 다닌다. 심지어 남자는 단발머리의 낭만적인 미대생, 여자는 긴 생머리의 다소곳한 가정대생이다. <사랑비>의 두 주인공인 인하(장근석)와 윤희(윤아)는 글로만 접해도 단번에 1970년대 첫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다. 윤석호 감독은 첫사랑의 풋풋한 감정을 살리기 위해 남녀 주인공을 대학 캠퍼스에 데려다놓았고,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노란색 물건을 꾸준히 등장시켰다. 인하가 주운 윤희의 일기장, 그 속에 꽂혀있던 은행잎, 두 사람이 함께 쓴 우산까지 모두 노란색이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는 꽤 섬세한 연출이다. 특히 우산 속에서 서로를 쳐다보던 순간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시작해 닿을 듯 말듯 한 어깨,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까지 차례로 훑어 내리는 카메라 기법은 이제 막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녀의 떨림을 전달하는데 한 몫 했다.

문제는 아름다운 그림을 뒷받침하기엔 상황 설정이 너무 진부하다는 데 있다. 첫사랑이 가져다주는 애틋함은 도서관 책장 사이로 눈이 마주친다고 해서, 눈치 없는 자동차가 튀기고 간 물벼락을 대신 맞아준다고 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수준을 넘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경지에 이른 빤한 설정은 오히려 “3초 만에 사랑에 빠진” 주인공과 그것을 지켜보는 시청자 간의 감정적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인하의 먹먹한 내레이션에 몰입하고 그 시절의 향수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서로에게 다가서는 두 사람의 발걸음만큼이나 속도가 느린 드라마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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