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재정위기로 해운사 및 선주들이 선박 구매계약을 잇달아 취소하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이 해운, 조선업계에 그대로 미쳤던 2009년의 위기가 재연되고 있다. 사진은 울산에 위치한 한 조선소 전경.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해운 시황 침체가 장기화되고 유럽발(發)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해운업의 위기가 또다시 조선업 등 연계산업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돈줄이 마른 해운사 및 선주들이 선박 발주를 취소하거나 인도를 연기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2008년 금융위기 직후와 같은 패턴의 '더블딥'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위기에 봉착한 해운업계는 '해운이 살아야 조선도 살 수 있다'며 선박금융 지원 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황기에 해운사의 돈줄을 죄는 것이 아니라 다음 호황기를 내다본 지원을 펼쳐줘야 해운은 물론 조선·금융 등 연계산업까지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한화오션 은 지난해 말 선주 측 사정으로 VLOC, 벌크선 등 5900억원 규모의 수주계약을 취소했다. 삼성중공업 도 유럽 선사인 유로나브가 발주한 수에즈막스 탱커 4척 중 3척의 인도 시기를 미루고 1척의 계약을 해지했다. 성동조선해양은 금융위기 이후 수주한 선박 중 17만DWT급 벌크선 4척 등을 선주 측 사정으로 취소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이 해운·조선업계에 그대로 미쳤던 2009년과 비슷한 패턴이다. 해운사 및 선주들이 자금난에 처하며 계약 취소 및 인도 연기 사례가 잇따르는 것이다. 최근 부진한 시황, 연료비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데다 유럽발 재정위기 등으로 다수 은행들이 선박금융 규모를 축소한 것도 여파를 미쳤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사들은 건조 대금의 20%를 선수금으로 받은 후 인도까지 4~5번에 걸쳐 건조 대금을 나눠 받는다”며 “인도 시기를 늦추면 그만큼 돈 들어오는 시기가 뒤로 밀리는 것이므로 매출,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해양 플랜트 위주로 수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형 조선사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에 속하지만 향후 몇 년간 조선업계의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사태가 재연되자 해운업계에서는 선박금융 등의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해운업황이 해운사뿐 아니라 연계산업인 조선, 금융, 철강, 기자재 등에도 큰 여파를 미치는 점을 감안할 때 수요산업인 해운업을 먼저 활성화시켜 이에 따른 자금이 연계산업 쪽으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중국, 덴마크, 인도 등 대다수 국가들이 대규모 금융지원을 통해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업 살리기에 나섰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대형 해운사들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국내 4위 해운사인 대한해운 이 지난해 초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기도 했다.
한 대형 해운사의 고위 관계자는 “지금 해운업이 회복되지 않으면 2년 뒤 누가 배를 짓겠느냐”며 “선가가 낮을 때 투자해 효율성을 높여야 하지만 선박의 담보가치 하락 등을 이유로 금융지원을 막아버려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수요인 해운업이 먼저 회복돼야 조선, 기자재 산업도 회복되는 법”이라며 “2008년 이후 경쟁력이 약한 영세 선사들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 업종 특성을 감안한 국가 기간산업 육성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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