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줄어든 세뱃돈, 그래도 희망은 크게

[아시아경제 노종섭 산업부장]아이들이 일 년 중 가장 많이 기다리는 날은 설이다. 생일날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모두 기다리는 날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에겐 설이 최고다. 기념일의 경우 선물이나 기껏 용돈 정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설은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번 설에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할아버지 집에서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시위 아닌 시위를 한 적이 있다. 설 차례를 지내고 난 직후였다. 사촌들과 나란히 큰아빠에게 세배를 했는데 큰아빠가 중고등학생인 조카들에게는 세뱃돈으로 3만원을 주고 초등학생인 조카, 즉 내 아들에게는 2만원을 준 것이 화근이 됐다.

"밥 먹어라"는 말에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던 아들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큰아빠가 1만원을 더 주자 화를 풀고 방에서 나와 떡국을 먹었다. 아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에 들어간 것은 큰아빠의 세뱃돈 차별이 계기가 됐지만 내막을 알아보면 예년만큼 불어나지 않는 세뱃돈 주머니의 영향이 컸다.

우선 지난해보다 친척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종갓집인지라 예년에는 많은 친인척들이 차례를 지내기 위해 왔고, 그 어르신들은 차이는 있지만 세뱃돈을 챙겨줬다.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는 친척들이 줄어든 것은 아들에게 곧 세뱃돈의 감소다.

예년 같으면 1만원을 주던 친척 아저씨도 이번에는 5000원만 줬다. 세뱃돈을 아예 주지 않은 어른도 있었지만 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었다.

이래저래 서운함 또는 당초 목표했던 금액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을 터였다. 최후의 보루로 생각했던 큰아빠마저 세뱃돈을 사촌형들보다 적게 주면서 차별까지 하니 설움이 더 컸던 탓이다.

서민들의 생활이 갈수록 궁핍해지면서 아이들의 세뱃돈마저 얇아졌다.
설날 아이들에게 주는 세뱃돈은 미덕이었다. 경제가 나아져 규모가 커졌고 많게는 10명 넘게 줘야 하다보니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몇십만원이 됐다. 얇아진 수입, 늘어나는 지출 등 먹고사는 일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담이 되는 규모다. 지출을 줄이다보니 세뱃돈마저 쪼그라든 것이다.

세뱃돈은 원래 돈으로 주던 것은 아니었다. 체면을 중시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세배하러 온 아이들에게 떡이나 과일 등 먹을 것을 내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돈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고 아이들은 이를 복주머니에 넣었다.

우리 선조들은 세뱃돈을 줄 때 봉투에 넣어 주되 겉봉에 반드시 '책값' '붓값'같이 적어 어디에 쓸 것인지를 분명히 해 건넸다고 한다.

지금은 풍습이 많이 달라져 아이들은 세뱃돈을 모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사려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세뱃돈이 희망인 것만은 변함이 없다.

아들은 설이 되기 전 세뱃돈을 받으면 놀이공원에 가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먹고, 게임머니를 구입하겠다는 나름의 계획을 세워놨었다.

하지만 예년에 비해 3분의 2에 그친 세뱃돈으로는 모든 계획을 이행할 수 없게 됐다. 아들은 목표달성에 못 미친 나머지 돈 3분의 1을 아빠가 보전해달라고 보챈다.

아들의 기분을 고려해 부족분 3분의 1을 보전해주는 것도 고려해봤지만 이 또한 우스꽝스러운 것이어서 아들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뭐라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서 세뱃돈도 줄어든 거니까 아들 너도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 '세뱃돈을 많이 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아들 너도 잘못이다'고 해야 하나 난감할 뿐이다. 어려워진 삶이 설날을 맞아 세뱃돈 받을 것에 부풀어 있는 아들의 희망마저 꺾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노종섭 산업부장 njs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