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10.26]박원순 당선자 프로필 '한국정치史 새로 쓰다'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박원순(56) 서울시장 당선자는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산 증인이다. 시민사회진영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그는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며 한국정치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지난달 서울시장 선거 초반에만 해도 단 5% 지지율을 얻었던 박 당선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극적인 단일화 양보를 얻어냈다. 이후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는데 이어 본선에선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박 당선자는 1956년 경남 창녕의 한 농가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이후 상경해 경기고를 졸업하고 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그러나 입학한 지 3개월 만인 75년 5월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4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학교에서 제명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에 다시 입학해 독학으로 사법고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1980년 합격해, 투옥 경력이 있음에도 운 좋게 검사에 임용됐다. 그러나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던 그는 6개월만에 사표를 냈다. 1983년 변호사 개업을 하고 나서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맡아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구로동맹 파업사건', '보도지침사건', '한국민중사사건',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이름을 알리다 88년 진보성향의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창립 멤버가 됐다.
그러던 중 돌연 1991년 8월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우리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선진국들의 사례를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1년, 미국 1년 유학생활을 보내고 돌아온 박 당선자는 1994년 참여연대를 설립했다. 시민운동가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참여연대는 정치권, 재벌, 공공기관 등의 개혁을 주도하며 기존의 진보진영과는 다른 방식의 시민사회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국회의원 낙선ㆍ낙천 운동 등 합법적 방식으로 주류사회와 맞섰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이었던 그는 2002년 "후배들이 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겠다"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가 일군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는 나눔과 기부라는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의 장을 열었고, '희망제작소'는 시민참여에 의한 지역발전 활동에 매진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