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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의 건강맛집] '여자만' - 도시에서 경험하는 남도음식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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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간장을 끼얹은 남도음식의 진수 '양념참꼬막'

양념간장을 끼얹은 남도음식의 진수 '양념참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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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양념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의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중략) 벌교에서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었고, 벌교 5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꾼들은 장터 거리 차일 밑에서 한 됫박 막걸리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것을 큰 낙으로 여겼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는 보잘것없는 장돌뱅이조차 탑처럼 껍데기를 쌓으며 벌교 꼬막을 먹을 수 있었다지만, 정작 서울에서 제대로 된 꼬막 요리를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물량이 일본으로 수출되는 벌교 참꼬막은 그 생김새조차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도시 촌놈들이 허다하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남도음식점 '여자만'에서는 '태백산맥' 중 염상구가 외서댁을 겁탈한 후 '쫄깃쫄깃한 것이 꼭 겨울 꼬막 맛' 이라고 칭했던 벌교 꼬막의 '쫄깃'함을 경험할 수 있다.


오감을 자극하는 매생이전

오감을 자극하는 매생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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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상호 '여자만'에서 '금남(禁男)의 장소'를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여자만(汝自灣)은 전남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위치한 순천만의 옛 이름으로, 한국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기름진 갯벌이 있어 최고의 벌교 꼬막이 숨쉬고 자랄 수 있는 '베드 타운'이다. 사실 꼬막의 제철은 11월부터 그 이듬해 3~4월까지 5개월 남짓한 찬 바람 부는 겨울이지만, 여름이라고 해서 '철분의 왕자'로 통칭되며 빈혈과 두통, 탈모에 두드러진 효과를 보이는 '약' 음식 참꼬막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여자만'에서는 7월 중순까지는 재료가 소진될 때까지 꼬막 요리를 낸다.


예로부터 임금의 수라상에 진상되거나 조상의 제사상에 올려져 '제사꼬막'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참꼬막이다. 참꼬막은 새꼬막(32개)이나 피꼬막(40여개)과는 달리 부챗살 모양의 골 수가 17~18개에 불과하고, 크기도 비교적 작다. '여자만'은 물기가 가시지 않게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낸 꼬막을 그대로 접시에 담아낸 '벌교참꼬막'과 그 위에 풋고추, 쪽파, 참기름, 깨소금으로 버무린 양념간장을 끼얹은 '양념참꼬막', 계란 옷을 입혀 기름을 두른 팬에서 익혀낸 '꼬막전', 꼬막살만 고추장 양념에 무쳐낸 '꼬막무침' 등의 요리를 낸다.


심플한 구성의 서대찜

심플한 구성의 서대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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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의 대표는 1980년대 충무로를 주름잡은 영화 감독 이미례다. 동국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고(故) 유현목 감독('분례기' '장마') 밑에서 도제를 거친 그는 1984년 '수렁에서 건진 내딸'로 그토록 꿈꾸던 감독으로 데뷔한 후 '물망초'(1987) '영심이'(1990) 등 모두 다섯 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시나리오도 일찌감치 끝냈고 제작자도 찾았지만 촬영 개시를 앞두고 제작 자체가 엎어지는 경우가 반복됐다. 몸도 마음도 수척해졌고 급기야 '먹고 사는' 경제적인 문제까지 그를 억눌렀다. 우울증 증세까지 찾아왔다. 오기가 생겼다.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예술은 그 다음이었다. 경기도 발안 사람인 그는 전라남도 고흥 출신의 산악인 박기성 씨를 남편으로 둔 탓에 시댁에서 정통 남도 음식을 접하고 배웠던 것을 떠올렸다. 한때 충무로에서 기세 등등하던 여성 중견 감독이 '잘 나가는' 음식점 점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기자가 '여자만'에서 시식한 메뉴는 양념참꼬막 외에도 파래와 생김새가 비슷한 매생이로 만든 탕과 전, 서대 찜과 '하모'양념구이였다. '아무 것이나 잘 문다'는 뜻의 일본어 '하무(はも)'에서 유래한 '하모'는 우리말로는 갯장어, 참장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생선이다. 갯장어는 일본 사람들이 여름 별식 중 최고로 여기는 생선으로, 그 중에서도 고흥 갯장어는 최고로 꼽힌다. '하모양념구이'는 고흥 앞바다에서 100여 개의 낚시 바늘이 달린 주낙으로 잡은 갯장어에 간장ㆍ양파ㆍ마늘 등의 '데리야키' 소스를 발라 초벌과 애벌을 반복하며 여러 차례 굽는다. 그 위에 매콤한 맛을 내는 날 생강을 채 썰어서 올리면 끝이다.


여름철에 제격인 매생이탕

여름철에 제격인 매생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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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성의가 없어 보일 정도로 '심플'한 구성이지만, 이것이 바로 '여자만'의 영업 방침이다. 파전의 주인공은 파이며, 서대찜의 주인공 역시 여타 '잡'스러운 채소류가 아닌 서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 고혈압 예방에 특효가 있는 생선인 서대를 그대로 쪄서 청양고추를 얹은 멸치액젓에 찍어먹는 서대찜 요리 역시 '여자만'의 방침을 잘 드러내는 요리며, 밑반찬으로 나오는 방풍장아찌도 별미다. 중풍과 통풍을 예방하고 항 두통, 피로회복, 거담, 진해작용에 효과가 있는 방풍(防風)나물과 다시마, 간장 소스의 밸런스가 훌륭한 방풍장아찌는 특유의 쌉쌀한 맛이 식욕을 돋우는 '일품' 밑반찬이다.


참꼬막과 마찬가지로 매생이도 10월 중순부터 출현을 시작하여 겨울 동안 번성하다 4월에 쇠퇴하는 대표적인 겨울 식재료다. '여자만'은 완도와 부산에서 자연 채취된 매생이를 겨울에 확보, 급 냉동한 상태로 보관하여 1년 내내 철분과 칼륨ㆍ단백질이 온전한 상태로 지켜진 매생이 요리를 준비한다.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1:1의 비율로 섞어 매생이와 홍합을 얹어낸 매생이전은 입 속 오감을 사정없이 자극하며, 다시마 육수에 매생이를 풀어 참기름 한 방울로 마무리한 매생이탕은 요즘같이 땀을 많이 흘리는 습한 여름 날씨에 제격인 '보양' 음식이다. 온 몸에서는 땀이 뻘뻘 나는데 정작 입 안에서는 엄동설한의 묘한 찬 기운이 풍겨난다. 참으로 색다른 경험이다.


우리집은// 여자만 관훈점 지배인, 장미


일주일 내내 내ㆍ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인사동의 한 골목에 위치한 '여자만' 관훈점의 장미 지배인은 '지하여장군'이라는 '카카오톡' 대화명을 쓴다. 대화명처럼 그는 남도음식점 '안주인'다운 호탕하고 시원한 외모와 성격의 소유자다. 지난 2005년 3월 이미례 감독이 '여자만' 1호점(인사동점)을 처음 만들 때부터 지배인으로 근무 중인 장씨는 "서울에서도 제대로 된 남도 음식을 소개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 감독의 이야기에 솔깃한 경우다.


워낙 단골들의 재방문율이 높아 주말 저녁에는 예약 없이 매장을 찾으면 끝없이 이어지는 '대기 라인'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인사동에 위치한 1ㆍ2호점을 비롯해 일산, 분당, 별내농원점까지 총 다섯 개의 '여자만' 직영점이 영업 중이며, 2호점의 경우 연간 1억7000만 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감독과 함께 새로운 메뉴와 레서피에 대해 언제나 고민한다는 장씨는 그 자신이 '여자만'에서 내는 모든 음식들을 '뚝딱' 조리할 수 있는 '준' 조리사다. 그는 '짠 맛은 덜하게, 또한 원 식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 것'이 '여자만'의 히트 비결이라고 말한다.


자문위원은// 김은미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매생이는 주로 남도지방에서 식용하는 녹조류로 파래와 유사하게 생겼다. 주로 11월부터 2월까지 겨울에 채취가 이루어지며, 양식과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100% 자연산이다. 철분과 칼륨, 단백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숙취 효과가 뛰어나다. 특유의 풍미로 주로 굴과 함께 국밥이나 탕으로 먹지만, 튀김가루와 부침가루와 섞어 전으로도 먹을 수 있다. 환경 오염에 예민해 바다에 오염 물질이 유입되면 이내 생육이 저하되는 대표적인 무공해 식품이다. 부재료를 최소화하고 다시마만으로 육수를 낸 '매생이탕'은 환절기 보양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꼬막은 방사륵(放射肋, 부챗살처럼 도드라진 줄기)의 숫자에 의해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으로 나뉘며, 이 중 임금이 먹는 수라상에 진상되거나 조상의 제사상에 올리던 것이 참꼬막이다. 전라도 벌교 지방의 특산물로, 단백질 함량은 높고 지방은 상대적으로 낮으며 칼슘과 철분이 풍부해 빈혈 예방과 발육에 도움이 되는 '약' 음식이다. 생식도 가능하며 전ㆍ무침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식용이 가능한 고단백 저지방 식품의 1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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